국회예정처 "최근 5년 무기계약직 정원 5배 증가"노동계 "차별을 제도화하는 가짜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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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16.4%)으로 슈퍼마켓 판매원, 음식점 종업원, 제빵사 등의 서민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는데다 청년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15~29세) 실업자는 50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8000명(3.6%) 늘었다. 실업률은 4.5%로 지난 2001년 3월(5.1%)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파이터치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파트 경비원 등 반복적 단순노무 노동자와 커피숍 종업원과 같은 비반복적 육체 노동자가 각각 28만9000명, 31만2000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시작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는 정규직 대신 무기계약직만 양산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복리후생, 승진에 있어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는 "무기계약직은 차별을 제도화하는 가짜 정규직"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대한민국 공공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현원 기준 공공기관 전체 직원은 44만6010명으로, 이중 정규직은 29만5704명(66.3%), 무기계약직은 2만7534명(6.2%), 비정규직은 3만3504명(7.5%), 소속외인력은 8만9269명(20.0%)이다. 이는 2012년과 비교하면 비정규직 비중은 12.0%에서 4.5%p 줄어든 반면 3.1%였던 무기계약직은 2배나 증가한 수치다. 비정규직 자리를 무기계약직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비중은 67.8%에서 1.5%p 줄었고, 소속외인력은 17.0%에서 3.0%p 늘었다.

     

    더욱이 무기계약직 정원은 2012년 6088명에서 2017년 3만4824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전체 공공기관 정규직 대비 무기계약직 비율은 지난해 기준 10.1%에 달했다. 기타공공기관이 15.2%로 가장 높고 준정부기관 11.7%, 공기업 4.2% 순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결정된 비정규직은 10만1000명이다. 이는 정부가 2020년까지 전환 목표로 세운 20만5000명의 절반(49.3%) 수준이다. 다만 이들 중 상당수가 무기계약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2017년 4분기 기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평균 11.3%였다. 기타공공기관이 25.6%로 가장 높았고, 준정부기관(5.7%)과 공기업(4.1%)이 뒤를 이었다. 비정규직 중에서는 기간제근로자가 96.1%인 3만2193명이나 됐다.

     

    정규직 비중이 30% 이하인 공공기관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우체국시설관리단,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테크, 한국잡월드,인천국제공항공사,국립박물관문화재단, 세종학당재단, 한국저작권보호원, 한국마사회,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보육진흥원, 한국장학재단, 기초과학연구원,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한국체육산업개발, 한국교육개발원, 중소기업유통센터, 태권도진흥재단, 국립광주과학관 등 21곳이다.

     

    그나마 공공기관 정규직 신규채용이 2012년 1만6400명에서 지난해 2만2056명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파이터치연구원 김강현 연구위원(행정학 박사)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애매한 무기계약직(중규직)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고용형태가 왜곡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명분과 실리가 충돌한 결과로, 조직체로서의 공공부문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라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이라는 직군을 만들어 비정규직의 전환과 채용을 확대하는 것은 복잡한 이슈에 대응해 정규직화라는 '명분'과 정규직화에 따른 조직 갈등과 예산 등을 고려한 '실리'가 충돌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또 "무기계약직은 급여와 복리후생, 처우, 승진 등에서 엄연히 정규직과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정부에서 의도하는 일자리 질의 개선효과가 나타나기란 쉽지 않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치에 집착한 정책에서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일자리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을 좋은 일자리, 비정규직을 나쁜 일자리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직군이 아닌 직무를 기준으로 노동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지나친 고용구조의 경직성은 자칫 조직의 유연한 대응을 저해할 수 있다. 직무가 반복적 육체적인 경우 자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사회변화의 큰 그림을 보고 급여나 처우 등 근로요소를 향상시키는 것을 우선해 논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정원 현황.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정원 현황.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천안시의회사무국 김종욱 박사는 "현행법상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에 해당하지 않고 비정규직 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본질상 비정규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정규직과 임금이나 복지면에서 차별이 있어도 법적 대응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다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희망하는 시각에서 보면 무기계약직도 그리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사회적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기 보다는 무기계약 전환에 관한 기본원칙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중장기적으로 정규직화로의 전환 단계에서 관리자가 필요한 경우 '중간(무긱)계약직 전환'으로서 검토해 보는, 과도기적 형태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러한 유기계약직에 대한 새로운 제도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어 향후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직업군으로의 활용과 직장문화 환경까지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