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발생·더딘 신규수주… '수익성 내리막'9년만에 신규 신탁사 허용… 금융권 '호시탐탐'
  •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대구 금호지구 스타힐스테이' 견본주택 내. 서희건설
    ▲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대구 금호지구 스타힐스테이' 견본주택 내. 서희건설


    신탁업계가 큰 소용돌이 앞에 서 있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침체로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신규사업자 진입으로 수주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수주정체로 인한 수익성 감소와 그에 따른 중소신탁사의 몰락을 우려했다.

    8일 아파트투유 분석 결과 올해 1분기 청약을 접수한 73개 단지 가운데 신탁사가 시행한 곳은 모두 19곳이며 이 중 11개 단지가 미달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1위 신탁사 한국토지신탁이 자체 브랜드 '코아루'로 선보인 서대전·연천·태안·강진·서귀포 등 5곳은 모두 미분양이 발생했다.

    5개 단지에서 공급한 일반분양 분은 총 958가구인 반면 청약접수는 146건에 그치면서 평균 0.15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연천전곡 코아루 더클래스' 전용 74.3㎡·84.9㎡B, '서귀포 법환 코아루' 전용 167㎡·177㎡ 등 4개 타입의 경우 청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토신이 지난해 분양한 포천·이천·청주·서천·동해 등 사업지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했다. '코아루' 브랜드는 중소건설사가 부지를 확보해 한토신에 개발신탁을 요청하면 추가 수수료를 받고 사용이 허가된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데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3년간 주요 신탁사들은 자체신용으로 자금을 차입, 신탁받은 토지를 개발하는 '차입형 토지신탁'으로 수익을 올렸다. 수수료율이 5%대로 높고 신탁사가 일부 공사대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리스크도 크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인 셈이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차입형 토지신탁은 부동산 호황기에는 수익 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침체기에는 시행사와 비슷한 사업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탁업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차입형 개발신탁의 명과 암'을 통해 "차입형 신탁개발 비중이 높은 신탁사를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 저하로 인해 앞으로 영업실적이 악화되고, 재무부담 확대로 신용도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보·분양관리 등 위험성이 낮은 비차입형 신탁시장도 여건이 좋지 않다. 정부가 올해 신규 부동산신탁사 추가 인가를 예고해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시장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2009년 이후 9년 만에 부동산신탁사의 신규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은행, 증권 등 금융업권의 신규진입이 가능해졌다. 현재 국내에는 총 11개 전문 부동산신탁사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 신규 설립이 거론되는 곳은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KTB투자증권 등이다. 여기에 생보부동산신탁에 관심을 갖던 신한은행도 신규 설립으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대부분 대형 금융회사로, 10여년 이상 부동산신탁시장 진출을 눈독 들이고 있던 곳들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중 1~2개 업체가 인가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NH농협은행과 미래에셋대우는 예전부터 신탁사 설립을 위해 금융당국에 수차례 문의한 바 있다"며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인가 절차가 시작되면 바로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대형 금융회사가 시장에 새로 진입하면 기존 신탁사들의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인데다 부동산 시장도 침체 국면에 접어들어 업황 전망도 악화되고 있어 신규사 진입으로 저가수주 경쟁이 나타나면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신탁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관리형 신탁 부문에 사업을 집중하는 중소형 신탁사들의 고민은 더 크다. 신규 신탁사는 설립 이후 2~3년간 차입형 신탁(개발신탁)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소형사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관계자 전언이다.

    하지만 대형 금융회사가 시장에 새로 진입하면 그동안 비차입형 사업에 집중한 중소신탁사들이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A신탁 관계자는 "현재 신탁 시장 규모에 비해 11개 신탁사도 많다고 보는데, 추가 신탁사들이 등장한다면 어려움은 더 가중될 수도 있다"이라며 "신규 회사가 진입하면 시장 구조가 재편되는 등의 변화도 있겠지만, 기존 인력이 유출되는 변화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경쟁 촉진이 아니라 일부 신탁사가 무너질 수도 있는 큰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M&A를 통한 신탁업계 지각변동도 예고됐다. 대형 금융사가 기존 신탁사 인수를 통해 시장에 진출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은행 등이 신탁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대형건설사 가운데 주택사업 비중이 가장 높은 현대산업개발은 생보부동산신탁 인수전에 유력 유보로 꼽힌다. 현대산업개발이 생보부동산신탁의 새 주인이 되면 자금력을 바탕으로 재건축·재개발 관련 신탁사업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부동산 규제 강화와 과잉공급 우려로 부동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며 "부동산신탁업계의 절대적인 수주 규모는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신규수주 정체 전망을 감안하면 수익성 및 이익창출력 개선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