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 심리 잡고 인상기조 유지
  • ▲ 지난해 최저임금위 전원회의 표결.ⓒ연합뉴스
    ▲ 지난해 최저임금위 전원회의 표결.ⓒ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관심은 인상률에 쏠린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하면서 노사 간 격차는 3260원에서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선 열쇠를 쥔 공익위원이 소위 '소수점(.)99' 착시효과인 단수가격 전략을 꺼내 들 가능성을 제기한다. 2020년 1만원 대통령 공약과 최근의 극심한 고용 부진, 경제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신축적 검토 주문, 소상공업계의 불복종 선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인상률을 한 자릿수로 묶되 인상 효과는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4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은 모두 불참했다. 전체 위원 27명 중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과 공익위원 8명 등 12명만 참석했다. 최저임금을 의결하려면 노사 위원이 각각 3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계나 경영계가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불참하면 의결을 통해 최저임금을 심의할 수 있다.

    류장수 위원장이 정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마지노선은 14일이다. 최저임금위는 13일 집중 논의를 벌이다가 자정을 넘기면 바로 회차를 변경해 14일 새벽에라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사용자위원 복귀나 근로자위원 퇴장 등 돌발변수가 생기면 14일 따로 시간을 정해 논의를 이어갈 수도 있다. 류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사용자위원이 오후에는 참석하리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위원은 이날 서울에서 따로 모여 최저임금위 참석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위원 일부라도 전원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근로자위원인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모두발언에서 "(사용자위원이) 오후까지 안 들어오면 표결을 하든 협상을 끝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노사 양측은 최초 요구안으로 각각 1만970원(월급 환산 225만5110원)과 7530원(월 157만원)을 제시한 상태다. 노동계는 올해보다 43.3% 인상, 경영계는 동결을 각각 요구했다.
  • ▲ 긴급현안감단회서 발언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연합뉴스
    ▲ 긴급현안감단회서 발언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차등 적용을 주장했던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결정한 최저임금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도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 부총리는 12일 경제현안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에 대해 "중단하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본다"며 "규모는 조정될 수 있으나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일부 업종과 55~64세 등 일부 연령층의 고용 부진에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가기보다 최근 경제 상황과 고용여건,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 시장의 수용 능력을 고려해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에서 합리적 결정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대선 공약인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내년 이후 평균 15.2%씩 올라야 한다. 내년 최저임금이 8678원은 돼야 한다. 김 부총리 발언을 종합하면 내년 최저임금은 16.4% 올랐던 올해만큼은 아니어도 일정 수준의 인상을 유지하되 경영계 반발은 3조원쯤의 혈세를 다시 투입해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올해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의 충격을 완화하려고 영세 사업자에게 노동자 1명당 현금 13만원을 지원하겠다며 도입한 제도다. 정부는 애초 올해 한시적으로 도입한다고 했으나 내년에도 시장의 반발을 세금을 풀어 무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다만 국회는 지난해 관련 예산을 통과시키며 내년 이후 현금 지원 규모는 3조원을 넘지 않게 편성하고 근로장려세제확대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이달 말까지 보고하라고 단서조항을 붙였었다.
  • ▲ 사용자위원 불참한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연합뉴스
    ▲ 사용자위원 불참한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연합뉴스
    일정 수준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올해도 결정권은 공익위원이 쥐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2일 최저임금위 독립성을 존중하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률의 지침을 제시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부가 위촉하는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공익위원은 정부 의중을 반영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 공익위원으로 물갈이될 때 친노동자 성향의 인사가 많아 내년도 최저임금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배경이다.

    지난 10일 업종별 차등 적용을 두고 벌인 표결에서 찬성 9, 반대 14표가 나온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날 회의에는 근로자위원 5, 사용자위원 9, 공익위원 9명이 참석했다. 사용자위원을 제외하고 근로자와 공익위원 모두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류 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최저임금위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으면 남는 게 없다"며 "언론에서 (공익위원의) 전문성보다 (정부의) 지침을 얘기하고 해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날 김 부총리의 '속도 조절'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공익위원이 단수가격 전략을 차용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즉 인상률을 9.9% 수준에서 제시해 평가 왜곡을 유도하는 것이다. 두 자릿수 인상의 가시 효과는 희석하면서 인상률을 한 자릿수로 묶었다는 심리적 효과는 살려 반발을 최소화하고 인상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견해다.

    최저임금위 파행 이전 경영계 일부에선 내년 최저임금 결정 수준을 8200~8300원대로 전망했다. 올해보다 8.8~10.2% 오른 수준이다. 9.9%(746원) 오른 8276원은 경영계 일각에서 예상했던 인상범위 안에 들어온다.

    2년 연속 실질적인 두 자릿수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최고조에 오른 경영계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기상여금 등 산입범위(산출 기준) 확대로 올해보다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계 반발이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