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 형식적 대화만 나눠… 남북경협은 ‘철도협력’ 선 그쳐방북 앞서 ‘사전교육’… 미국 자극할 발언 최대한 자제
  • ▲ 최태원 SK 회장(오른쪽부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지난 18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의 면담에 참석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최태원 SK 회장(오른쪽부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지난 18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의 면담에 참석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방북 경제사절단과 북한 관료의 만남이 실리가 없는 ‘상견례’에 그치는 모양새다. 양측은 남북경협에 관한 구체적인 대화 보다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다. 대북제재 속에서 특별한 선물 보따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재계의 예상이 현실화된 것이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경제사절단은 지난 18일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를 만나 남북 경제상황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국내 경제인 17명이 참석했다.

    리용남 내각부총리는 남북간 ‘철도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경협에 철도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재계 경제사절단이 1년에 수차례씩 북한을 방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 끊어진 철도가 다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날 양국 경제협력에 관한 대화는 철도협력 선에 그쳤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인들이 함께 오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를 통해 ‘뜬구름’에 머물고 있는 남북경협을 구체화하기 위한 속내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 등 4대그룹 총수들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북한을 방문한 소감 등만 간단히 언급했다. 북한에서의 투자 및 사업계획 등에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평양을 처음 왔다. 그간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직접 보고 경험하니 벽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호텔 건너편에 한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2007년 이후 11년 만에 북한에 왔는데 많은 발전이 있던 것 같다”며 “건물도 많이 높아졌지만 나무들이 많이 자라난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두번째 방북 소감을 밝혔다.

    재계 총수들이 북한과 형식적인 대화만 나눈 것은 경제사절단 출발에 앞서 받은 교육에 대한 ‘학습효과’다. 처음 북한 땅을 밟은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주말을 반납하고 북한의 정세와 경제상황 등을 공부했다. 또 미국을 자극할만한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주의사항도 함께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대그룹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은 돌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최대한 경계하고 있다”며 “미국의 시선을 의식해, ‘주연’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 역할만 맡으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총수들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 17일 열린 사전 방북교육에도 참석했다.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일정상 대리인을 보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참가했다. 그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만나 방북 일정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재계는 총수들이 정부 요청에 의해 방북을 결정한 만큼, 최대한 모든 주문에 ‘정석’대로 따르고 있다고 봤다.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사안 등을 최대한 자제한 것.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의 방북이 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에 요청돼, 그룹 내부에서도 혼란이 빚어졌었다”며 “그러나 이미 결정된 사안인 만큼 정부가 준비한 프로세스에 맞춰, 총수들은 당초 계획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경제사절단 준비에만 임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 등 재계 인사는 방북 이틀째인 19일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2호 양묘장을 방문한다. 지난 2010년 5월 준공된 이 양묘장은 북한 기술로 묘목을 양성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