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 총수, CEO등 연봉 공개 파장과 시각
  • 기원전 유럽을 제패한 로마 군대는 100명 단위 지휘 체계를 갖고 있었다.

     

    100명 정도를 거느리는 장수를 백부장(百夫長), 1,000명 급을 천부장(千夫長), 1만명급을 만부장(萬夫長)으로 임명해 지휘토록 했다. 오늘날 백부장은 중대장, 천부장은 연대장, 만부장은 사단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같은 100명 단위 통솔 시스템은 몽골제국에도 있었다. 칭기즈칸은 군대를 백호장, 천호장, 만호장 체제로 운용했다. 당나라도 이 체계의 효율성을 받아들여 군 조직 편제에 활용했다.

     

    백부장에서 천부장, 만부장이 되려면 치열한 경쟁과 검증을 거쳐야 했다. 천부장이 1만명을 지휘할 그릇이 되지 못하면 천부장에서 머물다 물러났고, 1만명의 군사를 무난하게 지휘하며 전쟁마다 승리를 이끈 장수(만부장)는 공신이 되어 최고의 영예와 부를 누리곤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주들은 유능한 장수들이 절실했다. 지략이 탁월한 장수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좌우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8세기~3세기의 중국 춘추전국시대야말로 걸출한 장수들이 절실했던 때였다. 당시 맹자는 “1만명의 병졸은 얻기 쉬워도 한 명의 장수를 얻기는 어렵다(萬卒得易 一長得難)”이라고 말했다. 천하가 어지럽고 수시로 나라의 지도가 바뀌는 상황에서 유능한 장수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낸 말이다.

     

    탁월한 장수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의 여러 전투가 입증해주고 있다.

     

    삼국지의 합비성 전투가 그 중 하나다. 조조의 장수 장료는 단 800명의 군사로 손권의 10만대군을 무찔렀다. 당시 강동 지역의 손권은 208년 적벽 대전의 승리를 여세로 몰아 전 군대를 모아 허도로 가는 전략상

  • 요충지인 합비를 대공격했으나 장료의 지략으로 대군을 막아냈던 것이다.

     

    당시 장료는 손자병법 36계 중 피실취허(避實就虛·적의 주력을 피하고 약한 곳을 취하라)’ 전략을 활용해 손권의 대군을 궤멸시켰던 것이다. 군사들은 장수가 지휘하는대로 움직이지만, 장수는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 가장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고 적합한 타이밍을 맞춰 결단을 내리게 된다.

     

    조조가 합비성을 지켜낸 장료에게 급여를 준다면 군사들보다 몇배를 줘야 적절했을까?

     

    샐러리맨 상상 못할 CEO 연봉 공개로 뒤숭숭한 경제계

     

    최근 우리 경제계가 때 아닌 대기업 연봉공개 논란으로 뒤숭숭하다. 올해부터 상장사들이 연봉 5억원이 넘는 등기이사들의 연봉을 공개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140억원을 비롯,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총수들의 연봉이 줄줄이 공개되고,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등기이사들의 평균 보수가 수십억원 대에 이르는 등 전문경영인(CEO)들의 경우도 일반 샐러리맨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연봉들이 공개되면서 연봉 책정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연봉을 받지 않는 삼성 이건희 회장처럼 연봉에다 배당소득까지 합쳐 발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주식은 개인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고 배당은 연봉과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대기업 총수들의 소득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트렌드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업 총수와 전문경영인들의 연봉 자체만 놓고 보면 성실하게, 죽도록 일해도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는게 고작인 보통 샐러리맨들에게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총수와 CEO들의 연봉이 글로벌 경제 전쟁터에서 사력을 다해 뛴 반사적 혜택이라는 점, 초일류기업을 이끌 극소수의 재목이라는 점, 기업들이 CEO들의 연봉을 회사 실적과 연동시키고 있다는 점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의 등기임원 연봉 총액은 전체 영업이익 36조원의 0.07%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영업이익 8조원에 등기임원 연봉총액이 0.1%, 영업이익 2조원을 낸 SK텔레콤은 등기임원 연봉총액이 0.14% 선이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애플 경영진 5명의 평균 연봉은 600억원대로 삼성전자의 10배에 달한다. 매출이 삼성전자의 30% 수준인 구글의 경영진 평균 연봉도 363억원으로 삼성전자보다 4배가 넘는 상황이다.

     

    대기업들이 전문경영인들에게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이 싫어 부장급 연봉을 주고 글로벌 전쟁터에서 상대들과 도저히 대적할 그릇이 되지 않는 CEO를 채용해 활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자명할 것이다.

     

    연봉공개 후 더 벌어지는 격차...인민재판보다 이성적 접근을

    대한민국은 '함께 적당히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각자 일하는 성과에 따라 각자 결실을 얻는' 자본주의, 시장주의를 경제시스템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다면 ‘인민재판식으로 CEO들이 샐러리맨들보다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많은 보수를 받고 어떻게 성과를 내는지 평가하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다만, 회사가 구조조정 중인데 오너가 수십억원씩의 보수를 받아가거나, GS건설과 금호석유화학처럼 회사가 적자를 냈는데 수십억원씩의 급여와 상여금을 챙기는 등 경영 성과와 관계 없이 기업을 '쌈짓돈' 빼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는 철저하게 차단돼야 한다.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보수 지급 행태는 사회적, 경제적 갈등만 증폭시킬 것이다.

     

    한편으로 정부와 정치권은 등기임원 연봉 공개제도로 인해 CEO들에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기업들의 관행이 깨질 것으로 기대하고 제도를 시행했으나, 결과는 엉뚱하게 오히려 유능한 CEO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00년대 초 국내의 실적 좋은 한두 은행이 은행장의 임금을 올리자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줄줄이 상향 조정한 전례가 있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가 350대 분석한 결과 1978년에는 CEO 보수가 일반 근로자들의 29배였으나 연봉규제가 강화된 1995년에는 123, 2000년에는 383배로 확대됐다. 78년부터 2012년까지 34년간 일반 근로자의 연봉 인상률이 5.4%였던데 비해 CEO들의 연봉은 875%가 올랐다.

     

    비슷한 기업체 CEO들의 보수가 오르자, 경쟁사에 비해 급여수준이 낮은CEO들이 높은 몸값을 쫓아 잇따라 경쟁사로 이직하고, 또 이직을 막기 위해 몸값을 줄줄이 올려줬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새 제도를 도입할 때 '파퓰리즘'에 흥분되지 말고, 국내·충분한 조사와 실증적 사례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사례다.

     

    정치권의 의도대로 연봉공개 제도 시행으로 기업들의 CEO 급여가 낮아지면 다행이다그러나 미국처럼 오히려 상향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매년 주주총회 시즌마다 발표될 CEO들의 연봉을 자신의 봉급과 비교하며 낙담할 대다수 국민들의 심리적 상실감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skyjk@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