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로 치닫는 삼성-애플 특허전쟁​... 애플은 왜 '특허괴물'의 길을 택하고 있을까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가운데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야만인 남성, 하반신은 말의 몸뚱아리인 포악한 종족이었다. 신성을 모독해 신의 저주를 받은 익시온과 구름의 자식들로, 호전적이어서 날고기를 뜯어먹고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곤 했다.

     

    또다른 괴물 프로크루테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기 침대 위에 누인 다음 침대보다 키가 길면 다리를 잘라 죽이곤 했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 ▲ ⓒ 영화 '트롤 헌터'의 한 장면
    ▲ ⓒ 영화 '트롤 헌터'의 한 장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트롤(Troll)이다. 동굴이나 어두운 숲 속에 살면서 생고기를 먹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해 살인을 일삼곤 했다. 북유럽에서 ‘트롤이 잡으러 온다’는 말은 버릇 나쁜 아이들에게 가장 공포스런 위협이었다.

     

    인류에게 ‘돌아다니며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을 열어준 애플이 이제 특허로 먹고사는 괴물(Troll), 곧 특허괴물 (Patent Troll)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지방법원이 지난달 6일 삼성-애플 특허 소송에서 애플 승소와 함께 9억3,000만달러(약 1조원)를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양측이 항소하면서 시작된 2차소송에서 애플은 특허 5개에 총 20억달러(2조1,0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송 공방은 매주 3회씩 이어질 예정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이를 보도하면서 '애플이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특허료 범위의 10~20배를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정책 전문 매체들도 애플의 요구가 전례 없는 것이며 미국의 특허시스템을 오염시키는 잘못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애플의 요구가 상당부분 받아들여질 경우 구글진영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로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모바일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 ▲ ⓒ 영화 '트롤 헌터'의 한 장면

    ▶악화일로로 치닫는 삼성-애플 특허전쟁​

     

    2011년 삼성전자에 대해 특허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세계 IT 전문가들은 삼성의 추격을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장치 정도로 관측했었다. 삼성전자가 다시 반소를 제기하는 등 양측의 공방이 확대되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합의를 거쳐 ‘공존의 룰’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애플은 법적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에서 승부하기 보다 특허 전쟁을 통해 매출을 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듯 하다. 전문가들조차 아연실색할 만큼 손해배상 금액을 터무니 없이 올리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애플의 전략 변화는 시장 상황과 직결돼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창시자 격으로 절대강자였던 애플은 2012년 19.4%로 삼성(30.4%)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난해에는 삼성 32.3%, 애플 15.5%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SA)가 올 1분기 삼성전자가 9,200만대(36.2%)로 애플 4,310만대(17%)보다 2배 이상의 우위 체계를 이어갈 것을 전망하는 등 세계 전문기관마다 향후 삼성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 ▲ ⓒ 영화 '트롤 헌터'의 한 장면

    

    ▶애플은 왜 '특허괴물'의 길을 택하고 있을까 

     

    삼성의 약진은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 잇따라 혁신적인 제품들을 내놓았던 애플은 이제 혁신보다 잘 팔렸던 안전한 제품에 집착하고 있다.

     

    유럽, 아시아는 물론 미국 소비자들도차 삼성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원인은 애플의 '안주' 때문이었다.

     

    애플은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랭해지자 다소 위험 부담이 있는 차별화된 혁신제품을 내놓아 승부를 걸기보다는 삼성전자와 구글을 상대로 특허 분쟁을 통해 감소한 매출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으로 방향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법정 공방은 오늘 29일 마무리될 예정이나 삼성전자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싸움의 무대가 미국 한 복판이다. 그동안 실례로 드러났듯이 미국 오바마 정부는 공공연히 애플을 응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재판부가 구성한 배심원단 10명은 경찰관, 상점 점원, 교사 등 IT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애플이 특허 소송을 제기한 내용은 ‘단어 자동 완성’ ‘데이터 태핑’ ‘음성인식 관련 통합 검색’ ‘데이터 동기화’ ‘밀어서 잠금 해제’ 등이 핵심인데 IT 기술 문외한들이 앉아서 무슨 판단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그동안 드러났듯이 배심원단 판정은 '성조기' 아래 뭉치는 애국심 재판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다.

     

  • ▲ ⓒ 새너제이 특허법정 /월스트릿저널 일러스트
    ▲ ⓒ 새너제이 특허법정 /월스트릿저널 일러스트

    애플은 이번 재판에서 ‘밀어서 잠금 해제’ 특허(2009년 6월 출원, 2011년 10월 취득)를 핵심 특허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스웨덴업체인 네오노드가 2005년 3월 출시한 N1m 휴대폰에서 이미 사용한 특허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 법원들은 모두 애플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미국 법원만이 이 특허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애플-미국 정부-법원이 세트플레이로 삼성을 궁지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초기 휴대폰에 과대한 특허 배상액을 걸었다면?

     

    남들이 수십년간 고민해 낸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저먹는 일은 중세 때도 있었다. 1474년 이탈리아에서 베니스 특허법이 등장한 것은 최초의 창안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특허권은 새로운 기술의 진보를 저해하는 역할을 했다.

     

    수백년간 전세계의 정부는 특허권자의 권리는 반드시 인정해주되, 어느 정도까지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골몰해왔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허권을 미흡하게 인정할 경우 비슷한 기술이 속출해 최초 창안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과도하게 인정할 경우 새로운 기술이 발달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인류의 기술은 최초 창안자에서 수백번의 새로운 기술이 더해지면서 발달하고 있다.

     

  • ▲ ⓒ 1973년 휴대폰을 발명한 마틴 쿠퍼
    ▲ ⓒ 1973년 휴대폰을 발명한 마틴 쿠퍼

    1973년 마틴 쿠퍼가 이동하면서 전화하는 휴대폰을 발명했을 때 무게는 1kg, 크기는 25cm에 달했다. 만일 당시 그가 포괄적으로 ‘이동하면서 전화하는 기기’ 특허를 내고 유사한 기기마다 수십달러 씩의 배상액을 걸었다면 인류에게 오늘날과 같은 스마트폰 세상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백열전구도 마찬가지다. 특허청에 근무해 서류작업에도 능했던 에디슨이 ‘전기로 빛을 내는 기기’라는 포괄적 범위의 특허를 받아 유사한 모든 기기에 과다한 배상금을 요구하며 시비를 걸었다면 형광등에 LED까지 오늘을 세상을 밝히는 물체들은 탄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명을 천직으로 여기고 3,000여 가지를 발명해 인류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에디슨(1847-1931)이 오늘날 새너제이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다면 무슨 증언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6677sk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