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강남구 개발방식 두고 이견… 2년 끌다 결국 '백지화'


  • 국내 최고의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강남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곳 구룡마을.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판자촌으로, 불과 1.3㎞ 떨어져 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곳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도심개발로 인해 밀려난 주민들이 산중턱으로 하나 둘 씩 모여들어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데일리경제는 때 늦은 장맛비가 내리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자리잡은 '외딴 섬' 구룡마을을 찾았다.

    지하철 분당선 구룡역에 내려 도보로 15분 남짓. 구룡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이번 도시개발지역 해제를 규탄하는 플랜카드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지난 4일 서울시는 구룡마을의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발표했다. 2012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며 개발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2년 이라는 시간이 소득없이 지난 것이다. 시는 "구역 지정 후 2년이 되는 날까지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아니하는 경우 구역 지정이 해제된 것으로 본다"며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더욱이 6·4 지방선거 후 서울시장과 강남구청장이 연임에 성공하며 이곳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극에 달한 갈등은 해결책이 없었으며 접점 또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양측은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놓고 '일부환지방식'과 '사용·수용방식'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는 개발비용이 증가될 것을 우려해 토지주에게 일부 땅으로 보상하겠다는 환지혼영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강남구는 서울시의 환지 도입방식을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부 토지주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판단해 서울시의 개발방식은 불가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입장은 달랐다. 한결같이 어떤 방식이든 개발이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했다. 개발로 인한 이익보다 기본적인 생활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개발 지연으로 구룡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20년 넘게 구룡마을에 살고 있는 70대 한 주민은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내 몸 따듯하게 누울 수 있는 방 하나만 마련해 주면 바랄 게 없다"고 한숨을 내셨다.

    어느 60대 주민은 "서울시와 강남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주민들을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서울시와 강남구 양측은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서울시는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강남구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가지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강남구도 "거주민의 신속한 재정착 및 주거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협의에 응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개발 진척은 어렵다는 게 주민들 대다수 생각이었다.

     


  • 이 같이 마을은 개발 무산으로 인해 긴장감이 돌고 있다. 


    마을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기자의 인터뷰를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개발 해제와 관련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는 않았다. 그들은 "할말이 없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라"며 자리를 피하기도 했으며 일부 주민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개발무산과 관련해 주민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인터뷰에 응한 한 주민은 "이번에도 사업 진행이 안될 줄 알았다. 개발 이야기가 나온지가 언젠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개발 해제에 대한 허탈함을 넘어 미래에 대한 기대감마저 사라진 모습이었다.

    또 다른 주민은 "이제 개발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싫다"며 "이곳에 담당 공무원보다 기자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현재 구룡마을은 115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 방식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 13일 구룡마을 토지주들은 '준공영적 민영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개발은 더욱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주민들은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와 '구룡마을 자치회'로 나뉘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서울시와 강남구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마을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주민들에게 하루빨리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룡마을 자치회'은 먼저 지난 14일 마을 개발을 둘러싼 주민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구룡마을 자치회 관계자는 "강남구청과 서울시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업 지연을 원하지 않는다"며 "구룡마을의 거주민을 위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호소했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도 오는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것을 예고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로부터 직접 받은 서명서를 제출하겠다고 알려왔다. 

    전문가들도 구룡마을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제기했다.

    개포동 K 공인중개사 대표는 "개발구역 지정 해제는 결국 애꿎은 원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형국"이라며 "이번 갈등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취재를 마치고 마을을 나서는 길에 의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판자촌 구룡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