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수첩]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현대중공업이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이다. 위기도 그냥 위기가 아니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현대중공업이 올 3분기까지 입은 누적 영업손실액만 3조2272억원이다. 한창 잘나갈 때 1주당 50만원이 넘게 거래되기도 했던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지난 30일 장 마감 기준 10만원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가로 수주했던 선박들이 오른쪽 발목을 잡았고, 건조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대'란 타이틀을 달고 무리하게 수주를 시도했던 해양플랜트가 왼쪽 발목을 잡았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판단에 현대중공업은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장 먼저 회사를 이끌어갈 신임 사령탑으로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을 임명했다. 또 실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전체 임원 262명 중 81명을 회사에서 내보냈고, 젊고 능력있는 부장급 인원들을 새롭게 중용했다. 또 흩어져있던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영업조직도 하나로 묶어 '선박영업본부'를 새롭게 출범했다.

    아울러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 프로젝트 중 손실이 예상되는 부분들은 싸그리 3분기 실적에 충당금으로 집어 넣었다. 엉망진창인 성적표를 제출함에 따라 주가가 더욱 떨어질 리스크도 있지만, 부실한 부분들은 확실하게 털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4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서며 시장에서 잃어버렸던 '믿음'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 현대중공업의 목표다.

    그렇게 현대중공업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현대중공업 내부에서 말이다. "월급 안올려주면 파업하겠다"고 외쳐대는 노조 집행부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 2분기 현대중공업이 1조10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어닝쇼크'를 기록하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집행부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갈수록 회사사정이 어려워 짐에 따라,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늘어갔다. 막상 쟁의행위 돌입 찬반투표함을 까보니 조합원 1만7906명 중 파업에 찬성의사를 나타낸 인원은 1만11명(55.91%)에 불과했다.

    아마 영업적자만 약 2조원을 기록한 3분기 실적발표 후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다면 아예 가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조 집행부는 여전히 임금을 올려달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약 7200만원이다. 그들의 불만은 같은 울산에 있는 현대차 직원들의 평균 임금 9400만원과 비교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비교대상이 왜 현대차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식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노조는 이제 임금 인상과 관련해 모든 명분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31일 잔업거부에 나서는 것은 물론, 다음달 7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부분파업을 벌일 것과 동시에 파업출정식을 단행한다고 예고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언제까지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 조선업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묻고 싶다. 이미 국가별 선박수주량 기준으로는 중국에게 1위를 뺏긴지 오래고, 아직 기술경쟁력 우위에 있다지만 이 격차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떻게 어떻게 쥐어짜고 쥐어짜서 사측이 노조가 원하는 만큼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정년이 머지않은 노조원들의 경우 당장은 얼씨구나 하고 좋을 수 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후배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일자리가 사라지는 최악의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큰 버팀목이다. 현대중공업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도 큰 타격을 입게된다. 노조 집행부가 눈 앞의 이익만 좇을게 아니라 좀 더 넓게, 좀 더 멀리 상황을 바라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