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소문...차제에 진실 밝혀지기를
  • 신임 국립오페라단장이 허위 경력으로 임명됐다며 검찰에 고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국 오페라계를 이끄는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이같은 파문에 휘말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 6개 오페라 관련 단체로 구성된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에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을 ‘위계(위조)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 한국오페라비대위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국립오페라단장을 고발했다. 이종현 기자
    ▲ 한국오페라비대위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국립오페라단장을 고발했다. 이종현 기자

    비대위는 소장에서 H 단장이 “상명대 산학협력단 특임교수직을 2014년 5월부터 맡았음에도, 2003년부터 11년 이상 유지해온 것처럼 경력을 위조해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1월초 해당 예술감독이 2003년부터 특임교수로 재직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가, 비판이 잇따르자 ‘2013년을 실무자가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비대위 측은 “도무지 임명 과정이 너무 불투명하고, 문체부의 교수 재직기간 해명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리고자 고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리아칼라스의 후계자? 

     

    오페라계가 신임 단장에 대해 들끓고 있는 것은 국내 오페라계의 수장 자리인 국립오페라단장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는 인물을 정부가 밀실 임명했다는 불만 때문이다.

     

    문체부는 H 단장을 임명하면서 “유럽과 일본에서 오페라 주역 가수로 활동하는 등 현장 경험이 많아 세계 오페라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과 기량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중진 성악가들은 대부분 “유럽 중앙무대에서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없다. 문체부가 말한 ‘현장 경험’이 도대체 어떤 현장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대부분 오페라계 인사들은 이 인사의 경우 오페라단 운영에 대한 경험이나 경륜,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오페라 단장은 “마치 신입 기자를 편집국장으로 임명한다든지, 교통순경을 하루 아침에 경찰청장에 임명한다든지 하는 정도의 파격적인 인사”라고 설명했다.       


    특히 음악계를 경악하게 한 것은 그의 비정상적인 개인 마케팅이다.


    ‘청와대 고위 관료 라인을 통해 이 인사가 국립오페라단장으로 낙하산 임명되려 한다’는 설이 파다하게 돌던 지난해 11월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가진 이 인사의 독창회 테마는 ‘칼라스의 추억(The Memory of Callas)’이였다.

     

    기획사는 ‘마리아칼라스 환생’을 주제로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유투브에는 마리아칼라스가  오페라 토스카를 부르는 모습을 오버랩시켜 올려놓았다. 


    ‘라 트라비아타’에서부터 ‘피가로의 결혼’까지 레제로-리릭-드라마티코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마리아 칼라스에 버금가는 소프라노는 세계 음악계에 앞으로도 나타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세계 음악평론가들의 중론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자주 부르던 노래 한 두곡을 비슷하게 연주하는 소프라노는 세계적으로 수백명에 달하지만, 부분적으로 가능할 뿐 누구도 칼라스처럼 소프라노의 대부분 레퍼토리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라 스칼라오페라 극장이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서는 세계 최정상의 소프라노들도 칼라스와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더욱이 한예진 씨처럼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경우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오페라계 관계자, 성악가 중 90% 이상은 한 단장의 임명에 대해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오페라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은 “국립오페라단은 국내 오페라단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예술인으로서 기본도 없고 오페라 운영 경험이나 경륜도 없는 인물이 예술감독을 맡을 경우 한국의 오페라는 후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오페라단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 감독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을 지원이 끊길까 우려해 표현을 자제하고, 성악가들은 상황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들어올지 모를 연주가 끊기는 등 피해를 걱정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수사 어디까지 밝혀낼까

     

    앞으로 검찰은 고발인 조사에 이어 한 감독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검찰의 적극성 여부이다. 검찰이 한국 오페라계의 미래를 생각하고 이번과 같은 파행적인 인사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강도 높게 조사한다면 한 예술감독의 경력 서류 문제에다, 어떤 경로로 임명됐는지까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음악계 내에서는 ‘제 2의 신정아 스캔들’이라든지 ‘청와대 실세가 서류를 문체부에 건네줘 장관도 누군지도 모르고 임명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무성하다. 검찰 수사 결과 '모든 것이 오해'라는 한단장 측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을 청와대 실세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밀었다는 소문이 맞는다면 검찰 라인을 통해 사건을 흐지부지 수사토록 암암리에 작업하거나, 아예 짜맞추기 식으로 한 감독의 해명을 기정사실화 해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문제로 문화예술계가 양분되는 등 파장이 갈수록 확대되는 현 단계에서는 그가 자진 사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행태로 볼 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 감독의 임명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대위 측을 비판하면서 “국내 계파와는 인연이 없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지만 국내무대에 설 기회가 별로 없다. 이는 옹졸한 일이고 우리 음악계에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 오페라 관계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국립오페라단이 진행해온 오페라의 주역은 대부분 외국 성악가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들이 맡아왔다. 오히려 국내에서 활동하는 실력있는 성악가들을 지나치게 배제시켜 역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아올 정도였다.

     

    문체부 측은 비대위 인사들이 국립오페라단을 장악하기 위해 검찰고발에다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비대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철회되면 원점에서 예술감독을 임명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며 비대위 인사는 요청이 오더라도 모두 고사할 것”이라며 “국립오페라단을 맡을만한 인물이 수십 명에 이르는 등 유능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세계 오페라계에서 한국은 이탈리아에 이어 가장 뛰어난 성악가들을 배출하는 나라로 올라섰다. ‘대중문화 한류’에 이어 ‘오페라 한류’로 세계 무대를 좌우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지휘자 정명훈이었다. 한 기업이 그 CEO의 능력 이상 발전할 수 없듯이, 오페라의 수준은 오페라단장, 예술감독 수준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와 함께 ‘문화융성’을 국정 4대 지표로 삼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청와대나 문체부가 예술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무시한 채 아무나 국립오페라단장에 임명하는 행태를 지속할 경우 한국 오페라의 미래는 암담할 수 밖에 없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단장 인사문제는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의 또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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