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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많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지난 2014년 한 해를 돌이켜 볼까요. 금융 담당 기자인 제게는 아이템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던 한 해였습니다.

    연초부터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발하더니, 조용해질 때 쯤 되니 대형 금융사의 두 높은 분들이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배드 엔딩으로 끝났지요. 두 분 다 임기를 못 채우고 현직에서 물러나야 했으니까요.

    이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다른 대형 금융사에서 차기 리더 자리를 놓고 또 잡음이 생깁니다. 원래 하던 양반이 연임하시리라 대부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거론조차 안 되던 분이 현직자를 제치더니 차기 리더가 되셨지요. 대통령과 같은 학교 동문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고요.

    네. 한 해 동안 금융권을 달구었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갈등, 그리고 이광구 우리은행장을 둘러싼 ‘서금회’ 논란 이야기였습니다.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뭘 취재해서 뭘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들이 계속 터지니, 이걸 그대로 전달만 해도 훌륭한 기사가 됩니다. 아이디어 고민할 필요 없으니 참 좋았지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같은 이슈를 계속 취재해서 쓰다 보면, 기사를 쓰는 저 부터가 지겨워진다는 겁니다. 가끔 ‘쓰는 나도 지겨운데, 읽는 독자들은 얼마나 지겨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가 바뀐 지 한참 지난 지금, 난데없이 작년을 회상한 이유는 이 ‘지겨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낙하산 인사, '관피아(관료+마피아)', '정피아(정치권+마피아)', '관치금융', '정치금융', '서금회'… 이미 지난해에 숱하게 썼던 표현들입니다. 제발 올해에는 이 단어들을 쓰지 않아도 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뜻대로 되질 않는군요.

    KB금융지주엔 최근 몇 년 간 사장이란 직함이 없었습니다. 회장 바로 밑에 부사장이 있었던 구조인데요, 지난 2013년 7월, 임영록 당시 KB금융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직 슬림화 △계열사 자율·책임경영 지원 강화 △운영효율성 강화 등을 이유로 사장직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없어진 지주사 사장직을 윤종규 회장은 되살리려고 했습니다. 국민은행장을 겸한 그는 은행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지주사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했던 건데요.

     

    하지만 정치권에서 ‘여당 출신 인사를 사장직에 임명하라’는 요구가 공공연히 들어왔습니다.

    결국 윤종규 회장은 사장직 부활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소신의 표현이었겠지요.

    서금회 논란으로 떠들썩하던 우리은행도 다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불거진 정피아·서금회 논란 때문인데요.

    우리은행의 새 사외이사 후보로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홍일화 여성신문 우먼앤피플 상임고문, 천혜숙 청주대 경제학과 교수,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 등 4명이 내정됐습니다.

    얼핏 보면 모두 학계나 여성계 출신들로 보이지만 사실 4명 중 3명은 정치권과 연결고리가 있는 인물들입니다. 홍일화 고문은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부대변인 출신, 천혜숙 교수는 이승훈 청주시장의 부인이며, 정한기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몸담은 적 있으니까요.

    특히 NH투자증권 상무, 유진자산운용 사장 등을 지낸 정한기 교수는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같은 서금회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KB캐피탈 신임 사장에 내정된 박지우 전 국민은행 부행장도 서금회 멤버입니다. 이 쯤 되면 이광구 행장의 “서금회는 그냥 동창들 끼리 만나 식사하는 모임일 뿐”이라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정피아며 정치금융, 서금회… 이런 단어들을 2015년에 다시 끄집어 내 또 써야만 하게 됐네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금융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바랄 걸 바라야지요. 일단 저는 ‘금융개혁’이란 단어를 기억 속에 묻겠습니다. 언제쯤 이 단어를 쓸 수 있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