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목소리
컵원지 담합 한솔 6천억 매출, 고작 30억 과징금
  • 충남 한솔제지 공장 전경ⓒ연합뉴스
    ▲ 충남 한솔제지 공장 전경ⓒ연합뉴스

     

    공정위가 발표한 제지업계의 담합 행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담합이 적발된 뒤에도 일부 제지업체들의 불공정거래가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상습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가 한솔제지다. 한솔제지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담합행위에 관해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담합행위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솔제지는 2004년 백상지 및 아트지의 가격을 담합해 11억3700만원의 과징금을 징수당한 이후에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총 17회에 걸쳐 일반백판지 및 고급백판지의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거래처에 적용하는 할인율 폭을 축소하는 방법 등으로 판매가격을 담합해 왔다.

    또 지난 2007년 8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컵원지의 톤당 판매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하며 31억6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전혀 이행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잡음은 한솔제지 뿐만이 아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깨끗한나라 △한창제지 △무림에스피 등의 제지업체도 '상습적 담합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담합은 제지업계의 관행이라 불릴만큼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수십억대의 과징금에도 불구하고 제지업계의 담합 관행이 계속되는 것일까?

  • 제지업체 6개 사업자의 컵원지 평균 판매 가격 및 펄프 가격 변동 내역ⓒ공정위
    ▲ 제지업체 6개 사업자의 컵원지 평균 판매 가격 및 펄프 가격 변동 내역ⓒ공정위

     

    ◇제지업계의 뿌리깊은 담합 관행 '과점때문'

    공정위는 제지업계의 상습적 가격담합의 원인으로 제지업계가 형성하고 있는 과점시장체제를 꼽았다.

    실제 국내 제지시장을 분석해보면 백상지(화학 펄프만으로 제조한 고급 인쇄용지)와 아트지(도료를 코팅한 정밀인쇄용지)에 대한 국내 시장점유율은 제지업체 상위 5개사가 7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적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 한솔제지, 깨끗한나라, 세하 등 5개사가 국내 백판지의 95%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제지 시장은 소수의 생산업자들이 제품의 가격과 시장 할당에 관하여 논의하기 쉬운 구조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컵원지 담합으로 얻은 한솔제지의 매출액은 2013년 기준 6000억원에 달한다. 그에 비해 과장금은 31억원에 불과하다. 현행 과징금 제도의 담합 억지력이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지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 부추켜

    제지업체들의 상습적 담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제지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종이용기 업체 관계자는 "제지업계가 함께 짜고 동시에 가격을 높이면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생활용품의 가격 또한 줄줄이 인상되는 도미노 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제지업체들의 컵원지 가격담합 사례가 대표적인 물가상승 사례다. 한솔제지 외 5개 업체는 지난 2007년 8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컵원지의 톤당 판매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했다.

    이러한 담합 결과, 담합 전인 2007년 7월에 비해 2012년 4월 컵원지 판매 가격이 약 47% 인상됐다. 같은 기간 컵원지의 주원재료인 펄프 가격은 약 13% 인상에 그친 것에 비하면 상당한 폭리를 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컵원지를 원료로 사용하는 컵라면 용기, 종이 도시락 등의 제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되면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제품도 가격이 상승하게 됐다.

    컵라면 제조업체 농심 관계자에 따르면 "(컵원지 담합 시기인) 2007년과 2011년 사이에 컵라면 가격이 인상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제지업계가 취한 부당한 폭리가 소비자에겐 피해로 전가된 것이다. 

    ◇해결책은 "징벌적 배상制로 소비자에 환원"

    제지업계 담합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문제의 단순해결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진욱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현행 과징금 제도는 실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한 푼도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 전액 국고로 귀속된다"며 현행 과징금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미국과 같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도를 채택해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덧붙여 "이런 제도는 비단 소비자의 피해 구제 뿐 아니라 사업자에게는 담합으로 얻는 이득 보다 적발 이후 손해가 더 커지게 함으로써 담합이 억지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벌적 성격이 강한 현행 과징금제도를 부당 이득 환수적 성격이 명확한 과징금제로 바꾸고 과징금 산정의 기준을 독점이윤의 산정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더 나아가 과징금 부과절차에 이해당사자인 소비자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징수된 과징금으로 피해자 기금을 조성하여 피해자구제에 실질적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