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및 LCD 성공 DNA 등 "잠재적 위협은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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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BOE가 LCD를 넘어 반도체 사업까지 욕심내고 있다. 그러나 BOE의 이 같은 행보가 우리 기업에 큰 타격을 입히진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인 BOE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BOE가 LCD 사업에서 보여준 저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회사로 거듭나 우리 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BOE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높은 '진입장벽'으로 둘러싸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생산 공장을 하나를 세우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국내 한 반도체 공장에서는 생산 라인 한 줄을 깔기 위해 15조원을 투자했다. 여기에 각종 장비와 인력 등 인프라 비용을 합치면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여됐다.

    예를 들어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 중, 웨어퍼의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장비의 경우 한 대당 가격이 1500억원에 이른다.

    해마다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금도 추가로 넣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5조원이 넘는 돈을 연구개발과 장비확충 등의 명목으로 지출했다. 삼성전자는 이 금액의 두 배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 모두 투자 규모를 매년 평균 1.5배씩 늘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NAND)플래시로 나뉜다. D램은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리지는 휘발성 메모리인 반면 낸드는 데이터를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는 비휘발성 기억장치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모두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SK하이닉스도 D램 2위, 낸드 5위 등 상위권에 올라있다.

    아울러 BOE가 선두권을 추월하기엔 기술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져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새로운 메모리반도체 역사를 쓰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80나노(1나노는 10억 분의 1m)대 D램 공정을 20나노 라인으로 바꾸는 기술혁신을 이뤄냈다. 낸드플래시 역시 수평으로 칩을 쌓던 방식을 버리고 업계 최초로 3차원 수직 적층 구조로 갈아탔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은 경쟁사 대비 1.5년 이상 앞서 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중 20나노 초반대 D램 미세공정 개발을 완료할 목표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사업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IBM과는 D램과 낸드의 중간 형태인 'PCRAM'을, HP와는 낸드 시장을 대체할 'ReRAM'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와는 D램 시장을 먹어삼킬 'STT-MRAM'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려면 기업만의 고유 기술을 확보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많은 특허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세계 수준의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개발 속도를 따라가는 일도 쉽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다른 어느 산업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존 강자들이 기술개발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BOE가 치고 들어갈 구멍은 크지 않다.

    하지만 BOE의 잠재적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BOE는 지난해 열린 한 전시회에서 세계 최대 98인치 8K QUHD(7680x4320)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선보인 바 있다. 8K 디스플레이는 풀HD(1920x1080) 보다 해상도를 16배 개선한 제품이다.

    아직까진 삼성과 LG가 세계 TV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만, 기술력만큼은 BOE도 4K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 기업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실정이다.

    1993년 4월에 설립한 BOE는 2003년 한국 하이드스반도체 산하 현대 디스플레이기술의 LCD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디스플레이 사업 기틀을 닦았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사세를 키웠다. BOE는 현재 디스플레이 분야 삼성과 LG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BOE는 LCD에서 거둔 성공 방정식을 반도체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지원사격과 인수합병으로 선두권과의 기술력 격차를 만회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 시장을 강타한 치킨게임 탓에 문을 닫은 기업을 다시 살려내 키울 수도 있다. 삼성과 LG 인력을 빼내 기술력만 빼먹고 내동댕이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는 측면에서 BOE가 위협인 건 부정할 수 없다"며 "다만, 반도체 사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고, 첨단 미세공정에 대한 기술력과 제품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