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법 이어 대기업 총수등 징역형시 5~10년간 복귀금지 법안
  • 법안통과 현실화할 경우 SK 최태원, CJ 이재현,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유탄 가능성 우려        

  • ▲ 대기업 총수일가 복귀 규제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
    ▲ 대기업 총수일가 복귀 규제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

     

    1966년 8월 18일 중국의 마오쩌뚱은 텐안먼(天安門)광장에 홍위병 100만명을 집결시켰다. 피의 숙청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홍위병은 이후 10여간 구사상과 구문화 타파를 외치며 수정주의자 색출에 나서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로부터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지식인이 수십만명이었다.

     

    홍위병의 행동들은 상식도 초월했다. 당시 홍위병이 내세운 붉은색은 그들의 혁명과 전진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였는데 ‘교통 신호체계에서 정지를 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존의 신호체계를 뒤집어버렸다.

     

    즉 빨간 불에는 통행을 하고 파란 불에는 멈춰선다는 하는 전무후무한 새 교통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교통사고가 폭증하고, 각 도시마다 혼선이 끊이지 않았다. 홍위병들은 결국 손을 들었고, 이 제도는 얼마 못가 폐지됐다. 하지만 중국은 수년간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다.
     
    대기업집단 윤리경영 특별법과 ‘글로벌 스탠다드’

     

    최근 대기업 총수나 그 일가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출소 또는 집행유예 기간 종료 후에도 5∼10년 간 계열사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당에서 발의됐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을 계기로 나온 법안이다. 국회를 통과한다면 최근 징역형의 실행 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이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경기 수원병)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기업집단 윤리경영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과 민생정책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세연 의원을 비롯해 여당 의원 10명이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겨냥한 박영선 의원의 소위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에 이어 김용남 의원의 법안이 발의되자 재계에서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민주주의, 시장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추세에 전혀 맞지 않는 법안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에서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을 바라보는 눈길은 싸늘한 상황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5조원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등 한국의 ‘이현령 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방식의 정책이 도마에 오른지 오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2015 국가경쟁력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144개국 중 26위를 차지했다.

     

    각 항목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거시경제환경(7위) 인프라 부문(14위) 기업혁신도(17위)는 비교적 상위권인 반면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는 97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은 82위였고, 법체계의 효율성과 정책결정의 투명성은 113위, 133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하며 한국의 국가경쟁력 지수를 끌어내렸다.

  • ▲ SK 최태원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
    ▲ SK 최태원 회장과 CJ 이재현 회장ⓒ

     

    재계는 ‘이학수법안’과 이번 ‘대기업 윤리경영 특별법안’이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벗어나는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통과 가능성을 떠나 이같은 법안들이 쏟아져나오는 것 자체가 기업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해외 기업들의 한국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게 것이다.

     

    이학수법의 경우 이미 마무리된 사안에 대해 다시 칼을 대는등 헌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법이며, ‘대기업 윤리경영 특별법안’은 민간인에 공무원의 기준을 들이대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대기업 윤리경영 특별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최대주주 일가는 징역 등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계열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 또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에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5년이 지나지 않으면 임원 선임이 금지된다.

     

    또 개정안은 대기업의 최대주주나 그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및 4촌 이내의 인척 등 특수관계인을 계열사의 임·직원으로 채용할 경우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땅콩회항' 사건으로 논란을 빚고 수감된 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조 전 부사장의 출소 후 업무 복귀와 고액연봉 수령 등을 제한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법안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50여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만약 법안이 시행된다면 SK, CJ, 한화그룹 등 최근 수년간 총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대기업들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 공무원?

     

    현행 공직자선거법 132조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또는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한자’의 경우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말하지만 김용남의원의 법안은 국회의원과 같은 공직자선거법 잣대를 대기업 총수들에게 들이대자는 셈이다.

     

    기업인의 역할은 기업 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면서 기업을 튼튼히 해 법인세를 많이 내고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것이다.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직자는 아니다.

     

    물론 오늘날 수십만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 총수들의 경우 공직자에 버금가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판단이 이루어져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른 뒤 또 다시 경영복귀에 제한을 두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제도일 수 밖에 없다.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는 대기업 총수나 그 일가가 복귀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이사회가 제동을 걸 일이다. 또한 부실한 경영의 결과는 기업전략, 제품, 서비스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심판받게 되는 것이다. 여론의 뭇매도 피할 수 없다. 

  • ▲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경영활동을 펴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왼쪽 두번째)ⓒ
    ▲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경영활동을 펴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왼쪽 두번째)ⓒ

    ‘경영판단’ 존중하는 선진국- ‘배임죄’ 대한민국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글로벌시장과 투기자본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국들 사이에는 경영자들의 자유로운 판단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배임죄’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1993년 도쿄방송과 특정금전신탁계약을 맺고 자금을 운용하다 3억6,000만엔의 손실을 발생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 노무라증권의 주주들은 경영진에 대해 ‘배임죄’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도쿄지방법원은 ‘기업경영 판단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판단이며, 회사에 손실을 초래했다 하여 책임을 물릴 수 없다“고 판시했다. 
       
    우리나라의 배임죄는 독일, 일본 등 대륙법체계에 따른 것이지만 독일의 경우 경영판단 원칙 및 배임죄 주체를 한정하고 있고, 일본도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뚜렷해야 처벌하고 있다.

     

    영미법 체계인 미국은 배임죄 자체가 없고, 일부 처벌 조항에도 경영판단 원칙을 명기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경영자의 판단 오류에 따른 손실은 민사 소송을 통해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형법 제2356조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제3조에 횡령, 배임 규정을 두어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처벌을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고강도 법을 적용해 범죄 기업인을 양산하고, 또한 여기에 더해 복귀금지 기간까지 신설하는 것은 과중 처벌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 개발국들의 추격으로 우리 기업들의 활약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조선, 자동차, 전자, 화학, IT 등 전 분야에서 해외 기업들과의 전쟁이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5만달러 고지를 향해 뛰어야 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마라톤 선수들’인 기업 경영자들의 사기를 북돋아가며 전진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최근 들어 발생하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전횡이나 불법적인 행위들은 시정돼야 한다. 대기업 총수와 3세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의 빨간 신호등처럼 ‘경제민주화’의 깃발 아래 이런 저런 명목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 제도들을 도입해 기업가 의욕을 꺾는다면 결과는 우리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기업 오너들을 겨냥한 법안들이 신중히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