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점령당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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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뭘 먹을까?

    가장 원초적이면서 항상 하게 되는 정답 없는 고민거리가 “오늘은 뭘해 먹을까”로 진화했다. 입을 것 없는 옷장처럼 먹을 것 없다고 생각했던 냉장고를 이내 뒤적거려본다. 그리고는 TV에서 셰프들이 제시한 레시피들을 마치 실험이라도 하듯 어줍지 않게 흉내낸다. 그렇다면 맛은? “와우! 꽤 괜찮은 걸” 입안에 음식이 들어가는 순간, 기분 좋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내가 이렇게 음식에 대해 능동적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그들이 제시한 레시피가 곧 요리의 정석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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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집밥 백선생>

     

    셰프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 셰프테이너. 쿡방이라는 새로운 트랜드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요즘 그야말로 셰프테이너 전성시대다. 말 그대로 그들에게 요리 실력은 기본이고,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엔터테이너적인 재능은 필수요건이다. 마치 실력으로만 승부하기에는 양념이 덜 된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몸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랄까?

     

    미각을 극대화시키는 공감각적 능력이 절대적이다. 곧 자신의 요리 실력을 포장하는 능력이 인기 셰프가 되는 척도이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은 정보전달이 주된 기능이었으나 이제는 예능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시청자들은 지금 “재미있는 음식”을 원한다. 특별한 레시피는 기본이고, 이들의 독특한 캐릭터는 음식의 맛을 배가시켜주는 중요한 옵션이 된다. 구수한 말투로 옆집 아줌마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하고 당당하게 잘난 척 허세를 부려도 밉지 않다. 쉐프의 캐릭터와 음식이 주는 비주얼이 버무려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는 순간, 시청자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로망 1순위가 “요리하는 남자” 라는 것 역시 이들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단순히 기능으로서의 요리가 아닌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과 왠지 여성을 배려해 줄 것 같은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다. 트렌드가 직업에 또 다른 의미 부여를 해준 셈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시기에 특정 직업군이 이렇듯 열렬하게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과잉은 늘 그렇듯 부작용을 동반한다. 최근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한 셰프의 출연은 프로그램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젊고 잘 생긴 이미지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출연자들의 혹평이 잇따른 형편없는 요리 실력은 그가 얼마나 미디어가 급조해서 생산해 낸 허상에 불과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게다가 파워 블로거의 레시피 표절 논란까지 더해지며 자진하차를 불가피하게 했다. 이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의 망각이 불러온 소음이다.

     

    저비용 고효율로 대표되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다. 최근 미디어는 적은 제작비로 쏠쏠한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음식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분간 이런 트렌드는 계속 될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마치 음식이라는 테마로 만족시켜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단시간 내에 이루어진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의 과소비는 곧 식상함을 불러온다.

     

    음식에 점령당한 미디어, 그렇다면 다양한 볼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번 쯤 고민해 볼 시점이다.


    문화평론가 권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