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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7월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왕성인지 여부를 따져보는 심포지움이 열렸다. 2조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되는 발굴사업이라는 보도만 보더라도, 우습게 지나갈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심포지움을 연 것이다. 그런데 심포지움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모 매체에서 '풍납동, 백제왕성이 아니라는 주장의 진짜 이유'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기자가 일리 있는 지적을 했으며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가 생각 없이 이권 싸움에 나선 것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했다. 애초부터 이런 손가락질을 각오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필자 혼자만 피해를 볼 문제가 아니라 수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까지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사에서 교묘하게 호도된 문제들은 밝히는 바이다.

     
    기사는 지역개발의 명분으로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왕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자체만 떼어 놓고 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관심이 경제적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라는 점까지 부인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까.

     
    하지만 뒤집어서,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왕성으로 몰고 가려는 진짜 이유'까지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 문제는 내막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의 하나를 택하는' 동화적인 상황이 아니다. 어떤 드라마 대사처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왕성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보다 나을 것이 있는지 내막 모르는 독자들께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포지움 발제문 제목에 필자가 하지도 않은 '재산권 침해'라는 문구가 삽입됐어도 섭섭함을 접고 주민들에 대한 변명에 나서보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성 고고학계 역시 주민들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부터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학자들은 이권에 초연한 사람들인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학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런 인식을 심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분야에서 그렇지도 않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특히 고고학계는 구조적으로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주 월성 발굴에 1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풍납토성에도 보상비를 포함했지만 2조원의 자금이 투입된다고 한다. 이만큼 고고학 발굴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 점은 고고학자들이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유능한 고고학자라도 발굴을 하지 않으면 업적을 쌓기 곤란하다. 그런데 발굴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자금을 대 줄 기관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대놓고 하지 않더라도, 그만한 자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달라는 요구가 발굴단에는 심각한 압박이 된다.

     
    그런데 일껏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발굴한 곳이,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 된다면 어찌될까? 이 때문에 종종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한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신들이 발굴한 곳의 가치를 과장하는 것, 발굴하고자 하는 곳에 대해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 고고학계 내부에서도 '우리가 학자인가 업자인가?'라는 자조의 소리가 나온다. 풍납토성도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로 지목된다.

     
    물론 기사는 '왕성이 아닌 백제유적이면 개발해도 된다는 것일까요?'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유적의 가치에 상관없이 무조건 보존해야지 개발의 명분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조를 폈다. 얼핏 보기에는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애써 외면한 맹점이 있다. 석기시대부터 역사가 이어져 온 우리나라에서는 '유적이나 유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오히려 드물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유물·유적 보호에만 집착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이웃나라 일본도 비슷한 처지다. 현실적으로 모든 유물과 유적을 보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대상지로 지정된 지역이 여러 가지 희생을 무릅쓰고 보존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보존의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풍납동 주민들이 1차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러니 이 자체만 가지고서는 집단이기주의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앞으로 주민 측에서 무리한 개발 요구가 나올 가능성까지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이는 이후 일처리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문제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풍납토성의 성격에 대해서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이 점을 의식하면 기사의 논리에서 황당한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사는 '제대로 된 발굴과 연구 없이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수도인지 여부를 토론으로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지역 개발의 근거로 사용하려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입니다'라는 문구로 마무리 지어졌다. 많은 사람이 찬사를 보낸 문구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황당하다 못해 울화가 치밀 정도다.

     

    우선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수도인지 여부를 토론으로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이라는 문장부터 보자. '토론으로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일까? 실제로 기성 학계는 지금까지 바로 이런 태도로 일관해 온 것이다. 왕성이 아니라는 견해는 철저하게 무시해 버린 채,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도 없이 그저 '왕성이라면 왕성인줄 알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기사의 논리대로 하자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토론 없이' 밀어붙이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학자들은 뭐 하러 키우는지 모르겠다.

     
    또 이렇게 '토론 없이' 밀어붙였다가,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니라면 그로 인한 후유증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일까? 엉뚱한 곳에서 왕성 찾겠다고 조 단위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부은 점만 문제가 아니다. 진짜 한성백제의 왕성은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훼손되도록 방치한 꼴이 되는 것이다. 무시할만한 후유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만큼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신중하게 사전 검증을 하자는 데에 거품 물고 반대하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하는 지는 여러 분야에서 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인정도 없이 안면 바꾸고, 자신들이 반대하던 주장에 전도사 역할을 하니까. 사실 지금 풍납토성이 왕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중 일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성백제왕성은 몽촌토성이지 왜 풍납토성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대하던 사람들이다.

     
    더욱이 기사는 풍납토성의 성격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 주장 앞뒤에 붙은 문장으로 절묘하게 사정을 왜곡시켜 놓았다. '제대로 된 발굴과 연구 없이'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기사는 풍납토성을 왕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고고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발굴도 8%밖에 되지 않았고 연구도 진척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내자고 한 것처럼 몰아갔다.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우선 8%라는 수치 자체를 절묘한 눈속임이다. 수치만 보면 정말 기초적인 발굴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내막은 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여러 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지역 중 상당수는 이른바 '시험발굴' 지역이다. 이곳의 발굴 면적은 얼마 되지 않지만, 주변지역까지 어떤 성격을 가진 곳인지 가늠해보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 즉 이런 지역에서 왕궁이나 대형사찰 같이 왕성의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면, 주변의 일정한 넓이까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8%보다는 훨씬 넓은 지역을 발굴한 셈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8%라는 발굴지역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발제문의 참고도에서도 제시한 바 있듯이, 이런 곳을 제외하고 왕성의 증거가 될 만한 건물이 들어갈 지역을 그려보면 형편없이 적은 면적 밖에 남지 않는다. 사실 웬만했으면 그동안의 발굴을 통해 왕궁이나 대형사찰 같은 왕성의 증거 한 귀퉁이라도 걸렸을 것이고, 확인은 몰라도 윤곽 정도는 잡혔어야 정상이다.

     

    시험발굴이 보통 중요한 유물이나 유적이 있을만한 곳을 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풍납토성의 발굴은 정말 황당한 확률로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발굴한 사람들의 감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절묘하게 왕성의 증거가 나올 지역만 피해서 발굴했다는 뜻이 되니까. 이렇게 억세게 재수가 없을 확률이 현실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러니 더 파 보아야 확인된다는 주장도, 거의 없는 확률에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라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연구성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현재 풍납동에 규제를 가한 뒤만 따져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성백제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만 해도 매년 몇 차례에 해당하며 수십 편의 논문이 양산된다. 그동안 기본적인 발굴과 연구가 없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년에 걸친 발굴과 연구 활동을 통해서도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왕성이라는 결정적인 근거를 발견하고 제시한 적이 없다. 뒤집어 말하면 발굴과 연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이나 연구성과를 쏟아내고도, 마치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처럼 인식할 만큼 가장 기초적으로 확인했어야 할 왕성 증거 확보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쏟아냈던 연구성과는 도대체 뭐였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시사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박순발 교수의 발제문이다. 박 교수의 발제문은 풍납토성을 왕성이라고 간주하고 이날의 핵심 논점과는 별 상관없는 자기주장 나열로 대부분의 내용을 채워 넣었다. 결정적인 논쟁이 붙었을 때, '연구성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을 변명으로만 일관했다. 오죽 했으면 필자가 토론 서두부터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제대로 알고 나온 거냐?'고 따졌을 정도였다. 사실 현장에 있던 사람 여럿이, 이런 발제문 내용에 분개했다.

     
    기사의 또 다른 문제는 마치 기성학계가 경제적 이익에 눈 먼 주민들에 맞서서 유적보존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처럼 구도를 잡아놓았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몰고 가니까,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유적 보호 문제가 마치 ○×문제 같이 확실한 답이 나오는 선악의 구도인 것처럼 인식한다.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이 딱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한 유적이라고 땅과 집이 압수된 꼴이다. 정말 중요한 유적이라고 해서 참고 살았는데, 20년이 되도록 그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왕성이냐고 따져 보면 '앞으로 나올 것'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면서 압류된 땅 일부는 자기들 마음대로 건물이나 주차장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이용하거나 원래 주인 대신 세를 받아 간다는 것이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기사는 주민 측의 태도 역시 심각하게 왜곡시켜 보도했다.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사실상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경제적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알고 보니 애초에 이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사적지 지정 반대 소송을 준비하는 풍납동 주민단체였고 대부분 풍납동 주민들인 방청책이 이 소장(필자)의 발언 하나하나에 열렬히 박수를 보냈고 장내발언에서도 "이 소장의 말을 듣고 풍납토성은 왕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모든 논쟁이 끝난 것처럼 기뻐했다고 썼다.

     
    이 기사가 위험한 것은 대부분이 팩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실제로 이 기사를 본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필자에게 연락해서 '분위기가 그렇게 험악했느냐'고 물어왔다. 그만큼 주최 측에서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어달라고 사정할 생각 없으니, 정확한 사실은 당시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필자에 대한 박수는 마지막에 두어 번 나왔을 뿐이고, 이것이 박 교수를 비롯한 반대 측의 발언에 대해 방해는 고사하고 영향조차 주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