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경영' 외길 허영인 회장, 한국최고 제빵기업 일궈
연매출 4조 넘어 고속성장 '프랜차이즈업계 미다스 손'
유일한 상장사 삼립식품, 3년새 주가 30배 올라 '화제'
'허영인 식 품질경영' 국내 넘어 해외로…해외로…

SPC 허영인 회장은 계열사의 빵을 작게 잘라 먹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해외 방문 일정이 있을때면 인천공항에 들어선 계열사 매장을 빠짐없이 돌면서 빵과 커피를 챙겨먹는다.

빵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의사의 조언에도 허 회장은 "빵 만드는 사람이 빵을 안 먹으면 누가 먹느냐"며 오히려 면박을 준다.

고(故) 허창성 창업회장의 뜻을 이어받은 허 회장은 연 매출 4조의 기업으로 SPC그룹을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고려당과 신라명과, 크라운베이커리 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제과점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를 독보적인 1위로 올려놓았으며, 파리바게뜨를 비롯해 '파스쿠찌'와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여러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6천여 개 가맹점을 보유하며 '프랜차이즈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올해로 창립 70년을 맞이하는 SPC그룹이 하루에 생산하는 빵은 약 1천만 개.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은 매일 이 회사가 만든 빵을 먹는 셈이 됐다.
 
◇ '빵'에 푹 빠졌던 대학생 허영인, 대한민국 최고 빵집 만들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경영 마인드뿐만 아니라 엔지니어처럼 기술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신념은 허영인을 움직였다.

대학시절 허영인은 맛있는 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맛을 보러 달려가기 위해 운전면허를 땄을 정도로 빵에 미쳐 있었다. 업계서는 허영인이 맛있는 빵을 찾아다니기 위해 아버지 허창성 회장을 졸라 중고 트럭을 구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제빵 현장에 있었다.

1981년 서른 셋의 허영인은 폼나는 미국 대학 경영학과(MBA)보다 미국 제빵학교에서 빵과 과자를 배우기도 했다. 미국 빵집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일했다는 일화도 있다.

허영인은 20대부터 빵에 집중하며 대한민국 자타공인 '빵 전문가'로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동안의 열정은 허영인에게 '프랜차이즈 왕국'을 선물했다.

제빵학교를 마친 허영인은 당시 영감을 얻은 '프랑스식 빵'으로부터 1986년 서울 강남구 반포동에 파리크라상을, 1988년에는 광화문에 파리바게뜨를 열었다. 오픈과 동시에 허영인의 '빵집'은 당시 태극당과 고려당이 장악했던 한국 빵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 허영인의 빵집은 전국에 3000개를 넘어서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허영인은 지금도 신제품을 내놓기 전 시식과 출시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PC 관계자는 "(허 회장은)지금도 제품 하나하나, 점포 하나하나 스스로 점검하는 현장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 ◇ '프랜차이즈업계 미다스의 손' 제빵왕 허영인…'한국식 빵'으로 프랑스를 꿈꾸다

    허영인 회장은 '빵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일찍부터 묵묵히 꾸던 꿈을 이뤘다.

    지난해 빵의 본고장∙미식의 나라로 유명한 프랑스에 당당히 진출하며, 서양의 음식으로만 여겨지던 '빵'에 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더해 세계에서 유일한 베이커리 문화 전파를 시작한 것이다.

    허영인 회장이 '제빵의 길'에 뜻을 품고 경영에 뛰어든 지 45년, 프랑스풍의 정통 베이커리를 표방하며 '파리바게뜨'를 만든 지 26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세계 최고의 제빵 국가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높은 자부심으로 미국, 일본 등 제빵 선진국의 기업들도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의 베이커리 브랜드가 해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도 한국 베이커리의 파리 진출에 주목해 보도했다.
     
    프랑스빵의 상징인 '바게트'는 하루 평균 7~800여 개씩 꾸준히 팔려나가며 까다로운 입맛의 프랑스인들로부터 맛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지에는 없는 파리바게뜨만의 '베이커리 카페' 컨셉도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방문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일 평균 매출액은 국내 매장 평균 매출의 3배를 넘기는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 원천은 허 회장의 '빵'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그는 늘 '품질'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현장에 집중했다.
     
    지난 2010년 이른바 '쥐식빵 사건'에서 허 회장의 자신감은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파리바게뜨 식빵에 쥐 시체가 들어있었다는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퍼졌다. 하지만 허 회장의 대답은 '절대 제빵 과정에서 유입됐을리 없다'였다.

    허 회장은 곧장 기자회견을 통해 제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이 사건은 자작극으로 밝혀졌고, 허영인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빛을 발했다.

    SPC 관계자는 "파리바게뜨가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베이커리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원동력은 허영인 회장의 품질경영과 적극적인 R&D 투자에 있다"고 말한다.

    1983년 허 회장은 국내 제빵 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설립, 2012년에는 각 계열사별로 분리해 운영하던 연구개발 조직을 통합해 '이노베이션 랩'을 출범하기도 했다.
     
    이노베이션 랩을 중심으로 허영인이 지난 해 연구개발에 투자한 규모는 500억 원. 이노베이션 랩은 매월 평균 500개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여러 단계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엄선된 일부의 제품만이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앞서 말했듯 허 회장의 맛과 품질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제과제빵에 대한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미국제과제빵학교(AIB)에 유학하며 이론과 기술을 습득했고, 지금은 주말마다 브랜드와 지역별 프랜차이즈를 둘러본다. 

    심지어는 허 회장은 매장별 주력제품과 매출 등을 줄줄이 꿰며 현장, 그리고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아직도 쌓아 올리는 중이다.
      
    ◇ 3년새 주가 30배 고공비행…허영인 식 경영 通했나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삼립식품·샤니·BR코리아 등으로 구성된 SPC그룹에서 유일한 상장사는 삼립식품 하나다. 

    2012년 1월 1만1900원에 불과했던 삼립식품 주가는 2015년 7월 25일 기준 37만원을 기록하며, 불과 3년여 만에 무려 30배 이상 급등했다.

    업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스런 시선도 있지만, 국내 식문화의 서구화와 '먹고살기 바쁜' 현대인들로 인해 그동안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식품 기업의 지구력이 이제서야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게다가 제조업 수준에 머물러 있던 국내 제빵 산업을 서비스와 지식산업으로 확대시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허 회장의 경영방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도 강하다.

    2004년 허 회장이 삼립식품(Samlip)과 샤니(Shany)의 'S', 파리크라상(Paris-Croissant)의 'P', 함께 일할 새로운 가족(Company)을 의미하는 'C'를 합쳐 만든 SPC그룹.

    그간 그의 노력은, 삼립식품은 브랜드 빵 부문, 파리바게뜨는 베이커리 부문,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과 도넛 부문에서 각각 업계 1위 브랜드로 자리 잡게 했다.


    ◆ 허영인 회장 약력
     
    △1949년생/ 경희대 경제학과 졸
     
    △AIB(American Institute of Baking)연수
     
    △삼립식품공업 대표이사 사장(1981)
     
    △샤니 대표이사 사장(1983)
     
    △비알코리아 대표이사(1985)
     
    △파리크라상 대표이사(1986)
    △태인산업 대표이사(1988)
     
    △태인샤니그룹 회장(1994)
     
    △2004년 SPC그룹 회장(현)

     

    <수훈>
     
    △국민훈장 석류장(2000)
     
    △프랑스 정부 공로훈장 오피시에 (2010)
     
    △프랑스 정부 농업공로훈장 슈발리에(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