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미련 갖지 말아야 할 계획
  • [권상희의 컬쳐 홀릭]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난 6월 창덕궁 내 석복헌과 수강재를 숙박이 가능하도록 개조하겠다는 문화재청의 궁 스테이 사업계획안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지키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까지도 이제 물질만능주의로 도배질 되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했다. 정신이 살아 숨 쉬어야 할 마지막 보루조차 이 시대는 허용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상업주의로 점철된 궁 스테이 사업계획안, 이것은 7년 전 끔찍하기만 했던 숭례문 참사의 기억이 실종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가 아닌가. 국보 1호가 주는 상징성, 그것은 숭례문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물질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이기에 온 국민이 화마에 휩싸인 그것을 보고 느꼈던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시간이 지나 숭례문이 다시 복원되긴 했지만 우리에게 주는 상징성까지 온전히 복원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질의 복원이 정신의 복원으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 상처가 악몽처럼 아직까지도 기억되고 있기에. 그런 이유로 문화재는 잘 지켜지고 보존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재를 대하는 기본 예의다.

     

  • ▲ <낙선재 뒤뜰>ⓒ
    ▲ <낙선재 뒤뜰>ⓒ

     

    다행히도 얼마 전 이 황당한 궁 스테이 사업계획안이 거센 비판 여론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의 압도적인 반대의견으로 보류 결정이 났다고 한다. 외국인과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이 계획안에는 안전성도 국민들의 위화감도 고려대상이 아닌, 단지 시대에 발맞춘 활용방안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적극적인 활용안이란 그저 돈 많이 벌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설득력을 잃어버린 이 계획안을 문화재청은 여전히 포기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표면적으로 보류결정이지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 위원 10명 가운데 9명의 반대 의견은 사실상 부결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이에 대한 기본 계획을 연내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애초에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던 말은 단지 거센 반대 여론을 의식한 공염불이었가. 국민이 낸 세금을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창덕궁은 사적인 동시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곳에 고가의 숙박시설이 있었다면 과연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이를 관리 감독하는 문화재청 만이 그 의미에 대해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과도한 상업주의가 들어서는 순간, 그 특성상 보존은 불가능하다. 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화재는 물질이 아닌 정신이 그 우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물질, 그것이 바로 문화재이다. 기본정신을 배제한 사업,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궁 스테이 사업방안에 대해 문화재청은 뭘 기대하고 있는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문화평론가   권  상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