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리더십 부재
  • '증권사 CEO'라는 위치와 역량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지난 3분기였다.

     

    각 사업본부별로 큰 틀의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고, 매매수수료가 수익원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수장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곳이 증권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나타난 3분기 실적을 놓고 보니 리더의 전략·전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증권사들의 3분기 성적표가 공개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한화투자증권이다. 주요 증권사들이 상반기에 비해 부침을 겪어 전분기 대비 반토막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적자까지 이른 곳은 한화투자증권 뿐이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3분기 당기순손실 49억3300만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영업손실도 138억8000만원으로 역시 적자로 돌아섰다. 한화투자증권 측은 ELS 헤지운용 부분에서 홍콩 시장 대응을 잘못해 S&T(세일즈앤트레이딩) 부문에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H지수 급락에 따른 ELS 손실은 한화투자증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타 증권사 역시 ELS 헤지를 위해 기초자산을 늘리는 등 대응에 나섰기 때문에 3분기 영업이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리테일과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등 타 사업부문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며 ELS 손실을 메꿔냈다.


    결국 ELS가 한화투자증권의 3분기를 적자로 이끈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헤지 운용 과정에서 원활한 시장 대응 역시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수개월 째 내홍을 겪고 있다. 사장과 직원, 그룹과 사장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내홍의 시작이 3분기와 맞물린다. 주진형 사장은 회사 직원들과 소통을 끊은 채로 3분기를 보냈다. 회사의 손실에 대해 우려하는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급진적 경영, 포퓰리즘에 치우친 경영에 몰두했다.


    그룹-CEO-임직원으로 이어져야 하는 소통이 단절되고 독단경영이 지속되자 고객들도 등을 돌렸고, 성장동력도 멈춰버린 채 3분기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이미 주진형 사장은 그룹과 내부 반발에 관계 없이 내년 3월까지 임기를 채우겠다고 공언한 만큼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실적도 그의 몫이 됐다.


    주 사장이 내년 3월 한화투자증권 CEO로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한다면, 그리고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다른 증권사 CEO 자리를 노려볼 생각이라면 한화투자증권 내부 추스리기를 바탕으로 실적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CEO의 공백에 따른 실적악화가 드러난 곳은 한화투자증권만이 아니다.


    현대증권 역시 윤경은 사장이 사실상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던 3분기 1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지난 2분기 840억원에 비해 79.0% 급감한 실적이다.


    윤 사장은 지난 3분기 몸은 현대증권에 있었지만 마음은 회사에 없었다. 현대증권의 주인이 오릭스PE로 바뀌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고 오릭스PE 측이 내정해 꾸린 새로운 경영진이 바로 옆 건물에서 인수인계를 위한 업무보고를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사람인 윤 사장은 언제 자리를 떠야 할지 몰라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곧바로 실적에 반영됐다.


    윤 사장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4분기 회사 정상화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현대그룹은 재무위기 속에 놓여있는 가운데 그룹 운명의 키를 현대증권이 갖고 있다. 그만큼 현대증권의 앞날은 책임감이 막중하다.


    현대증권은 일찌감치 NH투자증권·KDB대우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 등과 함께 자기자본 3조클럽에 가입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자격요건을 갖춘 국내 선도 증권사다. 하지만 현대증권의 실적은 이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증권사라 하기에는 성적표가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떠날 준비를 하던 윤 사장은 다시 임기 완주를 목표로 조직 재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르면 11월 하순 나올 임원 인사도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발생했던 여러가지 잡음들을 딛고 4분기에는 CEO 윤경은의 존재감을 다시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유래없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회사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며 회사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회사의 리더와 비교해보니 크게 느껴진다. 사장석은 아무나 앉을 수도, 앉아서도 안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