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기업정서 극복해 일자리를 늘려야… 법원은 경영 판단의 원칙 존중해야
  • 기업인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이재현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다.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는 이 회장에게 1600억 원대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2년6월과 벌금 252억 원을 확정했다.

     

    기대와는 달리 중형이 결정되면서 CJ 임직원 3만 명의 우려도 깊어졌다.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기업인 CJ그룹이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룹 회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정상적인 경영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과감한 투자 및 경영 활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업종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중대한 사안을 제대로 결정하는 것에 분명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 대기업의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중하게 처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법원은 IMF 사태 이후 경영 실패의 책임을 기업인에게 ‘배임죄’로 물어 왔고 이후 처벌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로 인해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과도한 처벌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의 경우 집행유예와 사면을 금지하는 입법까지 추진하기도 했다.

     

    문제는 배임죄의 규정들이 혼잡해져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기업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배임이라는 게 입증이 어려워서 오히려 너무 쉽게 형사  처벌로 가면, 검찰이 수사가 안 되는 사건은 무조건 배임 혐의를 적용하도록 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며 "IMF 당시 대우그룹 부도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검찰이 관련자들을 처음 배임죄로 기소했을 당시 그럴 거라고 예상도 못했는데, 법원은 배임죄를 아주 쉽게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었고 그것이 판례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모호한 규정들로 인해 기업인들이 배임으로 재판을 받을 때 마다 오락가락한 판결이 나기도 한다. 2007년 그룹의 총수가 계열사의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에 대출을 해 배임죄에 걸린 사례가 있는데, 이 사건은 의정부지방법원 판결에서는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009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는 대출행위는 경영판단에 속하는 사항인 점, 실해 발생의 위험이 없었던 점, 피고인에게 배임의 의사도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의 판결에서는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행위로서 위 회사에 대한 임무위배행위가 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하여 다시 유죄판결을 내렸다.

     

    같은 배임죄에 전혀 다른 기준을 대입한 사례도 있다. 대한보증보험의 대표는 한보철강에 지급보증을 섰지만 회사가 부도가 났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대법원은 기업경영에는 위험이 내재해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경영자가 선의로 기업 이익에 합치 된다는 믿음을 갖고 신중히 결정했으나 예측이 빗나가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다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 된다.”고 판결했다.

     

    이번 이재현 회장 판결에서 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당초 검찰은 이 회장이 2007년 일본 빌딩을 구입을 위해 CJ그룹 일본 법인에게 연대보증을 서게 한 전액이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대신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이를 바로 잡은 것이다. 무리한 배임죄 적용이 혼란만 야기한 셈이다.

     

    2013년 배임죄로 구속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서울서부지법은 “관계 회사의 부도를 방지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추상적 기대 아래 일방적으로 관계사에 자금을 지급해 손해를 입힌 경우는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판결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경영현신을 외면한 무리한 해석까지 나와서는 기업경영의 위축은 불가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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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은 경영 판단의 원칙 존중해야

    기업인들은 신중한 경영판단을 통해 사업 활동을 할지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무리한 경영 판단이 성공을 가져오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사업의 성패 예측이 불가능한 경영 판단에 배임죄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기업인의 배임 행위가 업무상 배임인지 경영 판단인지를 판별함에 있어 검찰의 자의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며 배임 행위의 명확한 입증이 쉽지 않다.

     

    경영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가가 내리는 일련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가는 사업기회에 대한 판단이 서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업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업수행을 지시한다. 경영상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사후적 사법 판단은 기업가의 사업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배임죄는 사적 자치의 제한 문제 뿐 아니라 경제 활동 전반에 법이 관여 하게 되면서 기업인이 혁신적인 경영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게다가 정상적인 경영판단에 의한 기업 활동까지 배임죄를 적용 시키는 것은 과도한 형사개입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중반부터 경영자 등에 대하여 주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행위의 취소, 유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때 책임을 제한하는 법리로서 경영판단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업무상 배임을 주의의무 위반으로 다루어 경영인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한다.

     

    독일의 경우 형법에 업무상 배임죄를 명문화 했지만 경영판단의 원칙 법조문도 함께 둬 입법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2005년에는 주식법을 개정하여 “회사의 업무에 관한 이사의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임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인정될 때에는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광범위하고 과도한 배임 처벌을 하고 있어 기업경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과도한 배임죄 적용 현상은 최근 기업들의 투자 활동이 위축 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이며 단순히 국내 시장에서의 기업 활동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 시키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경영 위축을 막고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인의 경영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반(反)기업정서 극복해 일자리를 늘려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정서는 배임죄의 처벌 수위강화를 지지하는 감정적 원인이다. 대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배임죄 처벌이라는 무리한 법 적용 현상을 불러 왔으며 기업의 투자위축, 경제성장 저해, 일자리 감소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선 장기적으로 반기업정서를 불식시켜야 하는 이유다.

     

    기업의 투자 활동이야 말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며 부족한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다. 무리한 배임죄 적용과 사회 전반에 만연된 반기업정서는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 부족으로 실업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를 저해 하고 있는 배임죄에 대한 법률상 무리한 적용을 멈출 필요가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