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억' 픽업트럭에 내미는 일본적 겸양의 도전장… TBWA\Chiat\Day 대행


  자동차는 미국인들의 생활에서 의식주만큼이나 필수적인 물건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인들에겐 자동차에 얽힌 추억도 많다. 어릴 때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 주던 차,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몰아 본 아빠의 차, 여자 친구와 첫 키스를 한 차, 첫 아이를 낳아 집으로 데려올 때 몰았던 차…. 그렇게 차는 곧 추억이기도 하다. 

  그렇게 차가 추억이고 문화인 나라에 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닛산 같은 브랜드가 ‘쉐비(쉐보레)’나 ‘닷지’의 추억을 밀어낼 수 있을까? 최근 미국에서 집행되고 있는 닛산의 픽업트럭 ‘타이탄 XD’의 광고를 보면, 닛산은 그 추억과 정면대결 하는 대신 그 추억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기로 한 것 같다. 

  픽업트럭은 6, 70년대 ‘머슬 카’ 이상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차다. 포드에서 생산하던 그 유명한 포드 모델 TT의 골격(chassis)에다 일부 몸체를 개조해 얹은 것이 시초였다고. 처음 닷지(Dodge)가 나무로 된 픽업트럭을 만들어내고, 이듬해인 1925년 포드가 철제 몸체를 만들며 진정한 픽업트럭의 시대가 시작됐다. 

  본래는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됐지만, 50년대에 들어서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미국인들은 이내 여가를 즐기기 위한 도구로 픽업트럭을 원했다. 사륜구동 픽업트럭이 있다는 건 언제든 필요한 짐을 싣고 어디에든 갈 수 있단 걸 의미했다. 유틸리티 차량이라 재원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많은 젊은이들이 생애 첫 자가용으로 픽업트럭을 원했다.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 주인공 마티의 부모가 첫 데이트를 하던 때는 공교롭게도 1955년이었으며. 아직 10대 청소년이던 마티가 원하던 차 역시 픽업트럭인 토요타 힐럭스(Hilux)였다. 픽업트럭이라고 하면 ‘닷지’나 ‘쉐보레’부터 떠올리던 상황에서 최고의 PPL을 해낸 것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토요타 힐럭스를 ‘마티의 드림 카’로 기억한다. 

  닛산(日産)도 토요타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용품을 제조하는데 큰 몫을 한 회사지만, 미국에서 겪는 상황은 좀 다르다. 닛산의 생산 대수는 토요타의 1/2에 지나지 않는다. 닛산의 고슨 회장이 최근 ‘2020년까지 토요타의 시장지분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공언하자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토요타와 닛산을 ‘다윗과 골리앗’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닛산의 새 광고 속 경쟁자는 토요타가 아니다. 그렇다고 닷지나 포드, 쉐비도 아니다. 닛산은 새 광고를 통해 그들이 경외하는 건 그 어느 자동차 마크(marque, 자동차업계에선 브랜드보다 마크라는 말을 주로 쓴다)도 아닌, 지극히 미국적인 자동차 마크들에 얽힌 ‘미국인들의 추억’이라고 말한다. 

  닛산의 새 광고는 이제 막 첫 차를 동경하기 시작한 어린 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소년들이 지켜보는 영웅적인 미국인들의 모습은 ‘우리 앞에 갔던 쉐비, 포드, 닷지’에 해당한다. 소년들은 쉐비, 포드, 닷지 세 거인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년들에게 나타난 새 차는 쉐비도, 포드도, 닷지도 아닌 닛산이다. 

  전 세대를 존경하지만 전 세대와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메시지가 아름다운 연출과 각본으로 포장됐다. 배경이나 소재는 극히 미국적이지만, 메시지 자체는 소름끼치도록 일본적이다. 일본인들은, 자기보다 앞선 사람을 철저히 존경하고 본받는데 그치지 않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은 답습이 아니라 초월에 있으니까. 쉐비, 포드, 닷지, 어쩌면 정말로 긴장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광고는 TBWA\Chiat\Day에서 대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