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의 사과는 분명 늦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앞두고 이뤄진 것 역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지난해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신동빈 회장이 사과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향후 재발방지가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 5년 전 2011년 8월,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다.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던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딱딱하게 굳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한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주 소비층은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는 유아와 임산부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자만 1282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218명에 이른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고, 너무나도 원통한 비극이었다.

     

    진짜 비극은 원인이 밝혀진 이후부터 터졌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품이 첫 시판될 당시 안전성 문제가 밝혀진 것이 없었다고, 기업은 정부의 규제대로 제품을 출시했다며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환경부가 마련한 예산을 기재부가 형평성 문제로 반대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재판 결과에 따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롯데마트가 먼저 매를 맞겠다고 나섰다. 롯데마트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인 대표가 직접 피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전담반을 만들고 100억원의 재원을 확보하는 등 구체적인 보상안도 제시했다.

     

    롯데마트는 이번에 발표한 피해자 보상 기본 방향을 토대로 향후 전담 조직에서 관련 피해자 및 시민단체 등과 유연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임을 밝혔다. 그 동안 관련 기업들이 회피만 했던 것과 달리 사태 해결을 위해 롯데가 죄인을 자청한 것이다. 김종인 대표의 입에서 나온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새삼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 및 판매업체는 24개에 달한다. 해당 제품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영국계 생활용품 업체인 옥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롯데의 용기있는 사과에 힘입어 홈플러스도 피해자 보상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고무적인 일이다.

     

    롯데의 사과와 대책 발표를 시작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회사들의 용기있는 동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계속 피하기만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된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고, 하루 빨리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