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A -합성고무 등 일부 품목 공급과잉 맞지만 업계 자율조정 가능"피나는 구조조정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정부 나서기 보다 업계 자율에 맡겨야"
  • ▲ 금호석유화학 여수 고무 제2공장.ⓒ금호석유화학그룹
    ▲ 금호석유화학 여수 고무 제2공장.ⓒ금호석유화학그룹


    세계 경제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원유(crude oil)의 가치가 50% 이상 감소했다. 원유 비지니스로 부를 쌓는 미국이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잃었다. 실업률은 줄어도 소비가 늘지 않는다. 금리 인상이 힘든 상황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 정상이 아니다. 저유가로 발생한 미국의 소비 위축, 이는 세계 경제 불황을 야기하고 있다. 소비 감소로 해상 무역을 하는 해운사들의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 국내의 해운사(한진해운·현대상선) 위기도 여기서 시작됐다. 해운사 위기는 조선업의 위기로 이어졌다. 배로 무역하는 해운사들의 거래량 감소는 배 주문량 저하로 이어지고 국내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사들은 손가락을 빨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수주(기술력 부족에도 불구 해상 유전 개발 프로젝트 참여)는 저유가의 공포에 휩싸였다. 저유가로 온 경기 침체는 투자 위축으로 인해 건설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철강, 플라스틱, 합성고무, 화학섬유 등 건축자재 시장에도 위협구를 던졌다. <편집자주>

석유화학, 업계 구조개혁 완료… 다가올 위기 대비

저유가로 발생한 미국의 소비 위축은 세계의 생산 공장을 자처하고 있는 중국의 위기로 이어진다. 막대한 양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국내 석유화학사들도 덩달아 위기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전체 생산품의 6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고 이 물량중 50% 이상을 중국에 보낸다. 
최근 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석화기업들은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등으로 수출시장 다변화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5대 산업 중 석유화학을 포함시켰다. 정부는 업계가 주도적으로 인수·합병(M&A)을 하도록 권장할 것이라고 구조조정 방향을 밝혔다.

그동안 석유화학은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글로벌 경제 위기를 매번 극복했다. 2000년대 현대석유화학을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나눠 인수하면서 업계의 위기를 한 번 극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최근 들어 삼성그룹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이 각각 매각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면서 또 다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유화 위기?…"70% 틀리고, 30% 맞다"

석유화학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옷, 신발, 안경, 시계, 가방,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부품 등 플라스틱, 고무, 섬유가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상품이 석유화학제품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류의 삶에 있어 석유화학제품을 벗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품목 별로 시황이 모두 다르고 어떤 단계의 제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시장 상황이 하늘과 땅 차이다. 유화 업계의 위기라는 정부의 판단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으로 석유화학 분야를 바라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석유화학 업계는 높은 수익성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 3대 석유화학사인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은 모두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 역시 좋은 실적을 거뒀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수익을 냈고, 내달 발표하는 한화케미칼의 실적도 양호할 것으로 보인다.

원유를 정제해 얻은 나프타(naphtha)로 에틸렌(Ethylene)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사들은 지난해부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에틸렌의 영향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원유의 가격 하락에 따른 나프타 가격 하락으로 원재료의 가격은 크게 떨어졌지만 일정한 에틸렌의 수요와 에틸렌 생산 공장의 한계 등으로 양호한 스프레드(원료와 최종제품의 가격 차이)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석유화학 전반의 위기라기 보다는 TPA, 합성고무 등 일부 품목의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로 볼 수 있다. 

TPA(terephthalic acid) & 합성고무… "힘들긴 힘들다" 

정부가 우려하는 것 처럼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회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사실상 진입 장벽이 없는 TPA. 과거 수입에 의존했던 중국 기업들이 잇따라 자체 생산을 늘리면서 수익확보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부분 국내 기업들의 경우 TPA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폴리에스터섬유 및 PET 등 다운스트림 공정 가동을 위한 자체소비용으로 사용하는 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최근들어 중국 TPA 업체들이 공장 운영 노하우 부족으로 잇따라 가동 중단에 나서면서 시나브로 수요가 회복되는 추세다. 합성고무 역시 기후, 천재지변에 따라 천연고무 가격이 요동칠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시각에서 언제든지 반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 TPA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은 롯데케미칼, SK유화, 태광산업, 한화종합화학, 효성, 삼남석유화학 등이 있고 합성고무는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LG화학 등이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경우 과거 피나는 구조조정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놓은 만큼, 일부 품목의 공급과잉을 놓고 '위기'라고 보는 시각은 맞지 않다"면서 "공급과잉 해소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체 자율적인 움직임의 경우 필요하지만 정부가 나서는 것은 시장 상황과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