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절감 위해 용선료 협상이 최대 관건자구 노력 전제로 정부 지원 필요
  • 오는 4일 채권단의 한진해운 자율협약 개시 결정을 앞두고 해운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미 현대상선이 조건부 자율협약 상태에서 국내 1위 한진해운마저 자율협약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국가 경제의 핏줄과도 같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0% 이상을 해운이 담당하고 있는 만큼 국내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몰락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그동안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서 산업의 바로미터인 해운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우선 물동량이 줄었다. 그러자 점차 경쟁은 치열해지고, 결국 운임 인하라는 제 살 깎아 먹기식 행태가 반복됐다.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에 연비가 좋은 최신 선박을 발주하기 보다는 배를 빌려 쓰는 용선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시황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더 깊은 늪에 빠지게 됐다.  

     

    현대상선은 사선 40척, 용선 85척 등 총 125척의 선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진해운은 사선 67척, 용선 92척 등 총 159척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액의 30%를 상회하는 1조8800억원을 용선료로 지불했다. 한진해운도 연간 1조원 안팎의 용선료를 내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때문에 채권단은 용선료 인하를 조건으로 걸고 있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지금까지 용선료 협상 대상인 22개 선주들과 논의를 펼쳐, 용선료 인하에 대한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도 채권단 자율협약이 개시되면 3개월의 시한 동안 선주들과 용선료 협상을 진행해 연간 2000억~3000억원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용선료 협상과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이 정부의 지원이다.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운업을 살려야 한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해운업의 중요성과 경쟁력 강화 필요성 때문에 저금리 지원 등 해운선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덴마크는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에 수출입은행이 5억2000만 달러를, 정책금융기관이 62억 달러를 대출해준 바 있다. 독일 함부르크시는 2012년 2월 세계 3위 선사인 하팍-로이드사의 지분 20.2%를 7억5000만 유로에 매입해줬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 회사 채무 18억 달러에 대한 지급보증도 섰다. 프랑스는 부도위기에 빠진 자국선사 CMA-CGM에 금융권과 함께 1조원이 넘는 금융지원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중국은행을 통해 중국원양운수(COSCO)에 108억 달러를 신용 지원하고, 추가로 중국초상은행이 49억 달러를 대출해줬다. 일본도 해운업계에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안정적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해운선사들에게 이 같은 지원책은 꿈 같은 이야기다. 정부 지원 없이 나홀로 각개 전투를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해운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에 대한 책임에서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선박펀드에 대한 재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해운업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게 되면 원가 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 경제선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선박펀드 참여 조건인 부채비율 400% 이하, 선사부담 10% 등은 너무나 문턱이 높다. 선박펀드 문턱을 낮추는 것도 향후 해결돼야 할 문제다.
     
    특히 해운동맹에서 쫓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 지원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살릴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운동맹에서도 양사를 신뢰하고 받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종연횡이 시작된 해운동맹에 포함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생존 자체가 힘들어진다. 영업력에서도 밀리고, 해외 해운사들도 국내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항만 인프라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는 얘기다. 해운업의 몰락은 유관산업인 조선업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가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지긴 하지만, 국내 기반이 없는 조선사들은 그만큼 경쟁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 자국 발주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국내 해운사들은 국내 조선업체들의 잠재적 고객인 셈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막아야 한다. 조건부 자율협약을 통해 회생의 기회를 줘야 한다. 현대상선 역시 현정은 회장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재까지 출연한 만큼 기회를 줘야 한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지난 2일 발표한 자구안 계획을 토대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한진해운도 인력 감축 등 좀 더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는 해외 사례처럼 국내 해운업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더 이상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외로운 싸움을 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정부의 지원 의지가 구체화될 때 급격히 재편되는 해운동맹에서 국내 해운사들이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해운업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