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이유로 결론 내려야 하는데… "엘리엇 주장과 판박이 결정"'주식매수價=시장주가' 원칙 깬 고법… "과도한 재량권 행사"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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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해 7월 삼성물산 합병 찬반 투표가 열렸던 주주총회장 모습. ⓒ뉴데일리.
    ▲ 지난해 7월 삼성물산 합병 찬반 투표가 열렸던 주주총회장 모습. ⓒ뉴데일리.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 인수합병에 반기를 든 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뜻한다.

    상법 제374조의 규정에 따라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주주총회의 합병 승인결의 후 20일 내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2달 안에 해당 주식을 모두 사들여야 한다.

    문제는 주식 가격이다. 법은 주식 매수가격을 주주와 회사가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합병을 하려는 기업과 반대하는 주주 사이 감정이 좋을 리 만무하다. 이럴 때 등장하는 곳이 법원이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시장주가를 참조해 매수가격을 산정한다. 주식시장 가격이 기업의 객관적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수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재량권을 폭넓게 갖고 있다. 주가가 객관적인 잣대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회사의 대내외적 상황이나 업종상 특성 등을 감안해 다른 금액으로 회사 가치를 매길 수 있다.

    그렇다고 법원이 칼자루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칙인 시장주가를 뒤집으려면 합당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대법원은 "시장주가가 순자산가치나 수익가치에 기초해 산정된 가격과 차이가 난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를 남겼다.

    이런 가운데 주식매수청구권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7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해 지금의 삼성물산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낮게 평가됐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최근 나왔기 때문이다.

    고법은 삼성물산이 당초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주당 5만7234원에서 6만6602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결정했다. 합병설 자체가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18일 주가를 기준으로 삼성물산의 가치를 책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주가가 회사 가치'라는 원칙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이사회 결의일 전날부터 과거 2개월, 1개월, 1주일간 형성된 종가에 일정한 가중치를 적용, 이를 평균한 값으로 구한다.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주가가 회사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예외 조항을 적용했다는 게 고법의 논리다.

    하지만 이처럼 원칙을 깨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고법은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삼성물산이 주가를 일부러 떨어뜨려, 제일모직과의 합병 비율을 산정할 때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합병 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고법은 또 삼성물산이 고의로 수주 공시를 미루는 등의 수법으로 주가를 낮춘 것 같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시계추를 1년 전쯤으로 되돌려보면 고법의 이 같은 판단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합병 반대 요구와 비슷하다. 집요하게 합병 비율이 공정하지 않다며 어깃장을 놓았던 엘리엇의 당시 주장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엇의 논리는 이미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최대 논란거리였던 합병 비율 산정에 기준이 되는 주가 산정 시점의 경우,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에서 금융당국의 해명으로 오해가 풀렸다.

    금융감독원은 15개 종목을 임의로 뽑아 주가를 결정하는 기간을 3개월, 6개월로 늘리는 등 기간을 바꿔가며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주가 계산 기간이 길어지든 짧아지든 어느 한쪽이 항상 유리한 경우는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수주 공시를 왜 제때 안 했느냐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수주했다고 쳐도 확정적인 계약서가 도달하기 전까지는 공시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최종 계약서 도달 전 김칫국 마시듯 공시를 한다면 허위 공시로 걸릴 수 있다. 삼성물산이 공시를 하지 않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결국 엘리엇은 지난해 일성신약과 함께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조정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1심은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을 적당하다고 봤다.

    엘리엇은 패소 후 곧바로 소송을 취하하고 한국을 떠났지만 일성신약과 일부 소액주주들만 지금까지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은 정확한 증거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식으로 공식처럼 이뤄진다"면서 "그런데 이번 고법 결정은 합병 당시 떠돌던 소문을 지나치게 많이 참조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원칙을 깬 파격적인 판결을 대법원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지켜볼 일이지만 삼성도 소문이 현실과 다르다는 걸 적극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도 "고법 판결이 과거 엘리엇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서 "법에 따라 진행된 합병을 법원이 재량권을 과도하게 행사해 뒤엎는다면 앞으로 누가 법을 지키겠냐"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