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국회의원 지낸 아버지 영향, 정관계 멀리 '대외활동' 자제2009년 이후 동부하이텍 3000억 등 총 3920억 사재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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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사진)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그가 그동안 보여준 진정성을 감안하면 터무니 없다는 관측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4000억원 가량의 사재를 쏟아 부은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진정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유 주식과 자택 등을 담보로 잡힌 금액도 3000억원을 상회한다.

     

    김준기 회장은 동부그룹을 혼자서 일군 1세대 재계 총수다. 73세의 나이로 제조업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69년 당시 25살(만 24세)의 나이로 미륭건설을 설립해 오늘날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총액(공정자산 기준) 8조원대 동부그룹을 만들었다. 금융위기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쪼그라들었지만 아직 건재하다.

     

    김 회장의 아버지 故 김진만씨는 정치인으로 7선을 지낸 국회의원이었다. 9대에는 국회 부의장까지 역임했다. 선친의 가업을 물려 받은 다른 제조업 재계 총수들과 달리 김 회장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아버지는 유학을 가서 더 공부할 것을 권유했지만, 김 회장은 기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흔히 김 회장을 '조용한 기업인'으로 비유한다.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아버지를 통해서 정치의 냉혹한 단면을 봤던 기억 때문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실천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치와 거리를 뒀고, 정부 및 금융권과도 친분이 많지 않다. 내 일만 잘하면 됐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금융위기 때 동부건설과 동부하이텍 등 주요 계열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의 압박으로 정상적인 재무구조 개선 및 자구안 이행이 이뤄지지 못했다. 재계에서는 동부그룹이 산업은행한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구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회장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SOS를 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대외활동을 안하는 경영스타일이 발목을 잡았다. 최근 부실경영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 유착이 있었다는 의혹과는 오히려 대조적이다.


    결국 주요 계열사를 잃을 수 밖에 없었다. 동부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최근 사모펀드인 키스톤PE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매각작업이 마무리 중이다. 동부제철은 자율협약을 거쳐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갔으며 현재는 워크아웃 상태다. 동부팜한농은 LG화학에 팔렸다. 동부익스프레스도 KTB PE 등 FI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상태로 재매각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반면, 동부하이텍은 2013년 11월 자구안 발표 당시 매각하려고 했지만, 실적 개선 등으로 산업은행이 사실상 매각을 백지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동부그룹이 대주주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제조업 분야에서 동부대우전자, (주)동부, 동부메탈, 동부라이텍 등이 동부그룹 주요 계열사로 있다.

     

    김 회장의 진정성은 사재출연을 보면 알 수 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김 회장은 여러 차례 사재를 출연했다. 김 회장은 동부하이텍 3000억원을 비롯해 동부건설 540억원, 동부LED 70억원, 동부팜한농 50억원, 동부메탈 200억원 등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출연을 해왔다.

     

    최근에는 2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동부대우전자에 대해서도 60억원의 사재출연을 결정했다. 동부대우전자까지 실행되면 2009년 이후 여섯 번째 사재출연으로, 총금액은 3920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런 그에게 금감원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약 2억7000만원의 손실을 회피했다며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2014년 10월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을 알고, 김 회장이 동부건설의 차명주식 62만주(1.2%)를 팔아서 손실을 회피했다는 게 핵심 의혹이다.

     

    하지만 매각 대금은 약 7억3000만원에 불과했고, 이 역시 채권 상환 용도로 사용됐다는 게 동부그룹의 항변이다. 또 2014년 11월 29일 금융실명제 개정안 실행을 앞두고 차명 주식을 처분한 것인데, 이것이 법정관리행을 미리 알고 손실을 회피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 회장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하려 했다면 당시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동부건설 주식 1400만주(24%)를 처분하지 않았겠냐는 주장이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4000억원 가량의 사재를 출연한 김 회장이 2억7000만원의 손실을 회피하려고 꼼수를 부렸다는 의혹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동부화재 5.94% 등 본인 소유 주식과 자택이 담보로 잡혀 있다. 가치로는 3000억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회사를 살리려고 전재산을 걸고 그룹 재건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그룹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김준기 회장의 진정성을 금융당국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