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대출 불가피…공공기관에 구원등판 요청
금융권, 주최측보다 비인기종목, 삼성은 이중 후원
  • ▲ 평창동계올림픽 스키경기장.ⓒ연합뉴스
    ▲ 평창동계올림픽 스키경기장.ⓒ연합뉴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세계인의 축제가 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장 올해 목표했던 공식 후원금 모금에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하다. 어수선한 정국에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등의 여파로 재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돈줄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돈맥경화를 풀려고 공공기관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경영실적 평가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공공기관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급기야 조직위와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경영평가 지침에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간기업 중에선 그나마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인 삼성의 이바지가 눈에 띈다.

    ◇ 최순실 파문 직격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420일 남았다. 한창 준비에 박차를 가할 때지만, 조직위 분위기는 무겁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지러운 가운데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장시호(최순실 조카)씨, 영상제작자 차은택씨 등 소위 최순실의 사람들이 평창올림픽을 놀이터 삼아 이권 놀음을 벌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설상가상 대회 준비에도 적잖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공식 후원금 모금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직위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포함한 간접비용을 제외하면 대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대회 운영을 위한 각종 활동비와 인건비 등을 포함해 2조2000억원쯤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43.6%인 9600억원이 공식 후원사들의 지원으로 충당된다. 원활한 대회 준비를 위해선 기업의 현금·현물 지원이 절실한 셈이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로 기업들의 후원이 급속히 위축됐다는 점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가) 연초에 터진 게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영향이 없지 않다"며 "무엇보다 새롭게 후원사로 참여하겠다고 들어오는 기업이 없다"고 말했다.

    조직위에 따르면 올해 후원금 목표액은 9600억원의 90%인 8640억원이다. 현재까지 86.5%를 달성한 상태다. 금액으로 따지면 336억원쯤이 모자라다. 애초 조직위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는 올해 목표 달성을 낙관했다. 지금은 올해 추가 모금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난달 후원 협약식이 예정됐던 기업 중 몇 군데는 연기 요청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위 관계자는 "후원금을 한 번에 사용하는 게 아니므로 당장 대회 준비가 멈추는 건 아니다"며 "다만 부족한 재원을 메우려면 금융권 대출이 불가피해지므로 이자 부담 등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평창올림픽 후원은 후원금액에 따라 △공식파트너 △공식스폰서 △공식공급사 △공식서포터 등 4등급으로 나뉜다. 5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공식파트너는 삼성전자·롯데·LG·SK·현대기아차·대한항공·KT·포스코·영원아웃도어 등 9개사가 참여 중이다. 공식스폰서는 300억원, 공식공급사는 1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 공사 한창인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연합뉴스
    ▲ 공사 한창인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연합뉴스


    ◇ 공기업에 구원등판 요청

    조직위는 돈맥경화를 푸는 방법으로 공공기관의 후원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물론 최순실 게이트 여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경제사정이 안 좋다는 게 기업들이 후원을 주춤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공공기관에서 앞장서 기업 후원을 독려하길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은 참여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 국제대회나 행사 때 특별히 후원금을 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경기장에 정전이 발생하지 않게 전기시설을 보강하는 정도의 지원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금 할인과 관련해선 "전기료는 산업통상자원부 인가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며 "과거에 관광진흥을 위해 한시적으로 관광호텔의 전기료를 할인해 준 사례가 있지만, 현재로선 어려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도로공사도 전례를 살펴볼 때 현금 후원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과거 현금 후원 사례는 없는 듯하다"며 "고속도로에 설치한 광고탑에 대회나 행사를 홍보하고 행사 등록차량에 대해 부분적으로 통행료를 할인해주는 선에서 협력이 이뤄졌다"고 부연했다.

    공기업 등이 공식적인 후원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는 경영관리개량 지표라는 게 있는데 이 가운데 노동생산성지표의 경우 해당 기관의 순이익이 평가의 출발선이 된다. 후원금으로 비용 지출이 커지면 수익성이 안 좋아지므로 경영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후원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직 (평창동계올림픽에) 후원해준 기관은 없다"며 "경영실적 평가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직위는 공공기관이 구원투수로 등판해 민간부문 후원의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며 기재부와 국회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기업 등이 내는 후원금을 경영실적 평가 때 감점대상에서 빼달라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조직위는 공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후원 기관에 가점을 주는 방안까지도 요구했지만, 정부가 공기업의 등을 떠미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 (이 부분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조만간 공공기관을 상대로 후원 관련 간담회를 열어 참여를 독려한다는 구상이다.

    ◇ 금융권은 비인기종목 선수 지원

    조직위는 금융권의 참여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은행이 마케팅 영업을 통한 수익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참여해달라고 호소한다.

    금융권은 접근방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주체측에 후원하기보다 비인기종목 선수에 대한 후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대기업처럼 경기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 능력은 있지만, 스폰서가 부족한 개인 선수에게 후원을 집중해 비인기종목에서 선수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후원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KB금융그룹은 봅슬레이, 신한금융그룹은 스키 종목(크로스컨트리·모굴·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선수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대기업 중에선 삼성의 이중 후원(?)이 눈에 띈다. 삼성은 맥도날드 등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후원사다. 이 때문에 삼성은 지난 8월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도 공식 후원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공식후원사는 조직위와 계약을 맺고 후원하는 조건으로 올림픽 후원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며 "삼성은 IOC 후원사로 이미 이런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후원사로 참여한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