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골드버그 머신, 스모, 무술, 공포영화…"너희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봤다"는 식 역사·전통 대신 '아니메' 문법으로 스토리텔링


  일본의 식품회사 니신(日新)은 소위 말하는 ‘약 빤’ 광고로 유명하다. 자동차와 같이 성능과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에서조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이 이성주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이동한지 오래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지못해’ 소비하는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분야에서 논리적인 상품 설명보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건 당연하다. 

  ‘약 빨고’ 만들었다는 말은 그러나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겐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정신 나간’ 것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니신이 올해 7월 집행한 인터넷 광고 ‘인스턴트 버즈(Instant Buzz)’도 흔히 ‘약 빨고’ 만든 광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코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떨까? 

  ‘인스턴트 버즈’는 한 소녀가 라면을 훔쳐간 소형 드론을 쫓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니산 공식 유튜브 채널 조회수만 110만 회가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영상 안에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요소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빨래 널다 힙합 리듬을 타는 아줌마, 지하보도의 노래하는 소녀들, 3초 ‘요리’, 루브 골드버그 머신, 스모 선수…. 여기에 토산도(東山堂)와 시세이도 화장품 광고, 인기 공포영화, 무술 만화의 유명 장면들까지 패러디 하면서 영상은 막판까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몇 년 전 일본의 유명광고대행사인 하쿠호도는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이나 스파이크스 아시아 등에서 발표한 세미나에서 일본의 문화가 선(禪)과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축약)로 이뤄져 있다고 분석했다. 선이 전통적인 일본 다도나 일본식 정원에서 떠오르는 정적이고 극히 동양적인 것이라면, 아니메는 과장되거나 산만해 보이는 일본의 전통 판화나 일본식 만화와 같은 것들을 말한다. 바로 니신의 ‘인스턴트 버즈’와 같은 분위기다. 

  알고 보면 유서 깊은 일본의 이런 ‘아니메’ 정신에는 최근 인터넷 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링크에 링크를 타면서 유튜브와 트위터, 페이스북로 이뤄진 ‘업무효율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진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각자 논리적 흐름에 따라 링크를 타고 다닐까? 알고 보면 인간 의식의 흐름은 니신의 라면광고만큼이나 두서없고, 하쿠호도가 아니메를 표현했듯 ‘혼란’스럽다. 

  일본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되고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일본문화를 폄하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인들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발견’된 이래 일본의 전통문화는 인상주의화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근현대예술 사조에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는 어쩌면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포장한 후 일본을 알려는 노력을 회피해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봐야 ‘극일’로 가는 길은 더욱 더 멀어지고, 무엇이 정말 우리 것이고 무엇이 일본 것인지 구분하기만 힘들어질 뿐이다. 

  멀리 가지 말고 우선 니신의 광고부터 이해해보자. 니산의 이 두서 없는 광고 ‘인스턴트 버즈’도 분명 스토리텔링이다. 오래되어 낡은 느낌을 주는 인스턴트식품 브랜드를 ‘회춘’시키는데 필요한 것은 브랜드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니신은 그걸 알았다. 광고 속에선 ‘유행은 지나도 라면은 니신’이라는 투로 말했지만, 그보단 ‘우리는 말라비틀어진 밀가루 덩어리만 파는 기업이 아니라, 오타쿠 문화, 하부문화, 젊은이들의 유행을 아는 기업’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젊은이들의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안녕, 친구? 반가워! 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21세기를 선도하는 초일류 식품기업 니신이라고 해. 맛과 영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고급 인스턴트 라면을 첨단설비와 위생공정을 통해 제조하고 있단다.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하하!’라고 하면 곤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