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스마트리빙제‧취등록세 지원 단지 '속출'제값 준 수분양자만 손해… "정부 지침 필요"
  • ▲ 김포 한강신도시에 붙은 할인분양 현수막. ⓒ뉴데일리경제DB
    ▲ 김포 한강신도시에 붙은 할인분양 현수막. ⓒ뉴데일리경제DB


    #1.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A아파트는 전용 163㎡를 최초 분양가 9억8000만원에서 50% 할인한 4억9000만원에 팔기 시작했다. 2010년 입주한 이 단지는 1년 전 미분양 물량에 대해 40% 할인을 단행했지만 물량이 소진되지 않아 할인 폭을 높였다.

    #2. 용인 수지구에 들어선 총 3600여가구 규모 B아파트도 20% 낮춘 가격에 할인분양을 하고 있다. 전용 134㎡ 경우 1억3000만원을 내면 즉시 입주할 수 있다. 잔금 1억6000만원은 시행사가 이자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3년간 유예가 가능하다. 취등록세 50%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분양가의 30% 정도만 지불하고 2년간 살아본 뒤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스마트 리빙제'도 시행 중이다.

    연초부터 부동산시장이 급속히 냉각되면서 불황조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실수요자는커녕 투자자까지 사라지면서 '극약처방'으로 불리는 할인분양 단지까지 나왔다. 또 2010년대 초반 등장했던 '전세형 분양제'까지 등장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A단지와 B단지처럼 할인분양에 나서는 단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자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할인분양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모두 5만7582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1만168가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입주량이 증가하는 지역과 분양 추진력이 떨어지는 지역에서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며 "입주물량이 풀리는 내년까지는 분양가 할인이나 장기 미분양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분양은 서울 강남권도 위협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12월 청약접수를 받은 서울 서초구 C단지가 강남 재건축 단지 가운데 최장 미분양 기간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40여가구 정도 미분양 물량이 남았는데, 시공사 측은 저층형만 남았다고 주장하지만 20층 미계약 분이 시장에 돌고 있다"며 "분양가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현재 남아있는 물량도 전용 84㎡ 이상이라서 할인분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상옵션 부분을 어느 정도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는 지 여부에 따라 계약 시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형 분양제는 2~3년간 전세임대 후 매매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프리 분양조건부 전세 애프터 리빙 스마트 리빙 등 명칭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국내 주택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던 시기에 과잉공급 문제까지 겹치면서 건설사들이 꺼내는 판매 전략이다.

    당시 이 같은 조건의 미분양 아파트가 홈쇼핑 상품으로까지 등장하면서 업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대형건설 E사 관계자는 "할인분양이나 애프터 리빙 등은 브랜드 이미지를 감안하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판매 전략"이라며 "건설사로서는 시장 전망이 어둡기만한데다 비용 부담을 버티기 힘들 때 택하는 극약 처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미분양 털어내기' 방법들이 제값을 주고 산 수분양자들에게 손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입주 당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기에도 벅찬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4년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 F아파트가 30% 할인분양을 진행하자 주민 30여명이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1명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할인분양 중인 B아파트 역시 주민 시위는 물론, 법정 소송까지 치달았다.

    다만 시행사 측이 "미분양 해소를 위한 불기파한 방법"임을 호소하고, 피해를 일부 보상하면서 갈등은 다소 진정된 상태다.

    전세형 분양제 역시 마찬가지. 일정기간 거주 후 퇴거를 앞둔 가정에 관리업체 직원들이 찾아와 원상복구를 이유로 세세한 흠집까지 걸고 넘어지는가하면, 계약해지 가구에 대해 또 다시 할인분양에 나서면서 분양가는 물론, 단지 이미지까지 깎아먹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윈원은 "2010년대 초반 미분양 애물단지를 임시방편으로 처리했던 방법이 전세형 분양이었는데, 시장 상황이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아 건설사들이 또 유예를 해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라며 "각 사업장마다 공급 조건이 천차만별이었던 만큼 단기로 살던 거주자들이 떠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인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건설업체와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침이 미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팀장은 "2010~2013년 할인분양 여파로 이에 불만을 가진 기존 계약자들이 줄줄이 소송을 걸었던 2014년 즈음의 상황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며 "할인분양 등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관리하는 것도 시장 거래 질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할인 폭의 제한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건설사가 할인분양에 나서기 전에 수분양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다거나 할인분양 가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세형 분양제를 적극 활용하게 하는 등 정부가 지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