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불확실성에 금융당국 회계감사까지…차환 발행 난맥유동성 부족시 자금압박 가중될 수도
  •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2017년 회사채 만기 현황. ⓒ금융투자협회
    ▲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2017년 회사채 만기 현황. ⓒ금융투자협회


    10대 건설사가 연내 갚아야 할 회사채 만기물량이 2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 불확실성 확대와 금융당국의 회계감사 강화로 차환 발행보다 보유 현금으로 갚는 경우가 늘어날 전망이다. 유동성이 풍부하지 못한 일부 건설사의 경우 '돈맥경화'까지 우려된다.

    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시장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0대 건설사 만기 회사채는 모두 2조87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오는 3일 삼성물산 만기 회사채 2800억원을 시작으로 주요 건설사 회사채 상환이 줄줄이 시작된다.

    회사채는 기업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발행기업은 계약기간에 따라 일정 이자를 지급해야 하며 만기일에는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통상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신규 회사채를 발행,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만기 채권을 갚는 차환 방식을 쓰거나 내부 유보금 등으로 현금 상환한다.

    분기별로는 1분기에 28%가량인 8300억원 규모 회사채 상환이 몰려있다. 4분기에는 가장 많은 1조원이 만기 도래한다.

    기업별로는 삼성물산이 1조7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합병으로 제일모직 상환 물량까지 포함되면서다. 전체 업종 중에서도 현대제철(1조15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대우건설도 3500억원 규모 회사채 상환에 대비해야 한다. 현대건설의 연간 만기 회사채는 3000억원에 달한다. 이어 대림산업이 2300억원을, SK건설과 포스코건설·GS건설은 각각 2000억원씩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문제는 건설 회사채 발행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최근 건설경기를 이끌었던 주택경기가 올해 침체될 가능성이 크고, 공공건설과 해외건설도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중 상당 부분을 차환 발행 대신 현금상환이나 금융권 대출을 통해 갚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이 A 이상인 대형사들은 대부분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차환 방식으로 갚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건설사들의 회사채 차환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현금상환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물산 역시 2800억원의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하기로 했다. 삼성물산 측은 "이번 회사채 현금 상환은 신용등급이나 발행 여건이 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현금 여력이 있어서 내린 결정"이라며 "2월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는 현금으로 상환하고, 3월과 4월 만기는 아직 상환 방법에 대해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최고 신용등급(AA+)을 가진 삼성물산마저 현금 상환을 결정하자 업계에서는 회사채 발행 여건이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해외수주 감소와 적자공사 진행 등 해외 부문 부실 손실 축소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잘 나가던 국내 주택 부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며 "여기에 건설사 회계감리가 진행되면서 손익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 건설업 회사채 발행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건설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만기가 가까워지는 회사채에 대해 원칙은 '차환'이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경우 현금 상환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만기 시점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상환 방법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원칙은 차환이지만, 회사채 발행이 안 될 경우 현금 상환도 고려 대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적어도 1분기에는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감사보고서가 나오는 3월 말까지는 감사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채권투자심리가 극도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실제로 건설업계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시장의 의심이 여전하다. 앞서 대우건설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보고서가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받았고, 금융감독원은 현대건설의 회계감리에 착수하는 등 사업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주요 건설사들이 보수적인 회계감사와 감리 진행 과정에서 추가적인 손실을 공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B사 관계자는 "공사 진행률과 미청구공사가 엄격하게 검토되면서 미청구공사가 많은 대형사들이 예상 밖의 대규모 손실을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2016년도 감사보고서 제출이 완료되는 3월까지는 채권시장의 불안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추가손실이 발생할 경우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은 물론, 회사채 차환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해에는 포스코건설과 GS건설, SK건설 등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씩 내려간 바 있다.

    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회사채 발행은 물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조달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험에 처할 수 있어 회계감사나 감리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은 신용등급 'BBB'의 중견건설사들 역시 회사채 상환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주택시장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중견사들의 자금 압박이 대형사 못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BBB 등급의 건설사들은 회사채 신규발행이 어려워 차환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사가 보유한 현금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오면 10%가 넘는 대출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A등급 건설사의 회사채 금리가 3~4%인 점에 비하면 부담이 엄청난 것이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건설경기 불확실성에 그룹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회사채 신규 및 차환 발행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지난해 주택경기 호황에 중견사들이 유동성이 큰 부담이 없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져 사내 현금이 부족한 건설사의 경우 자금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10대 건설사 외에는 두산중공업이 4300억원의 회사채를 갚아야 하며 △한화건설 2100억원 △한라 625억원 △KCC건설 500억원 △태영건설 500억원 △계룡건설 332억원 △한양 250억원 △한신공영 210억원 등의 회사채 만기가 연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