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컨설팅업체 선정… 신호·통신부문 새 기준 요구할 수도일본·중국, 기술확보 안정적 평가… 한국, 외주 불가피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한·중·일 3국이 수주전을 벌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건설사업(이하 말·싱사업)에 유럽발 변수가 생겨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마련할 컨설팅회사로 영국업체가 선정된 가운데 신호·통신 부문에서 유럽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발주처협의체가 구체적인 RFP를 마련할 용역업체로 영국 JDP사를 선정했다.

    JDP는 말·싱사업에 채택될 고속철도 기술과 안전 표준을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과 관련한 문서 준비도 JDP가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오는 12월5일 RFP를 제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발주국가의 입찰제안요청이 나와야 본격적인 입찰경쟁이 시작되므로 RFP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주요 관심사항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JDP가 영국계 업체라는 점이다.

    이 사업을 수주하려는 한국사업단 한 관계자는 "JDP가 RFP에서 고속철 시스템과 관련해 유럽 기준을 요구할 수 있다"며 "세계 표준도 유럽 철도를 따라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호·통신부문을 예로 들면 제시하는 제품규격에 따라 경쟁국의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지금은 한·중·일 삼국이 치열하게 물밑 수주전을 벌이지만, 막판에 프랑스·독일 등 유럽 기업이 뛰어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삼국은 컨설팅업체 선정에 따른 실익과 회사정보 수집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사업단 관계자는 "JDP는 유럽지역 실적만 있을 뿐 아직 아시아지역에서 고속철 관련 컨설팅을 진행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JDP가 맡았던 프로젝트에 중국이나 일본이 참여한 경우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아직 삼국 중 어느 나라에 특별히 유리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사업단 일각에서는 이번 프로젝트 상부(궤도·시스템·차량) 사업의 신호·통신부문과 관련해 유럽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가 딱히 유리할 건 없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일본의 경우 전력·철도 등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 중인 히타치제작소가 지난해 이탈리아 최대 방산업체 핀메카니카의 철도차량·신호사업 부문을 인수해 기술 역량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핀메카니카가 최대 주주인 철도차량 생산업체 안살도브레다와 철도 신호장비업체 안살도STS를 히타치가 품에 안으면서 유럽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중국도 유럽회사로부터 기술전수를 해 큰 걱정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최근 개통한 수서고속철(SRT)과 호남고속철의 신호시스템을 일본업체가 인수한 안살도에 맡기는 등 자체적인 기술력 확보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최악에는 다른 유럽업체에 외주를 맡겨야 하는 처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유럽 기준을 따라가는 추세이나 신호·통신과 관련해선 따로 염두에 두는 방식이 있다"며 "JDP가 수주 경쟁국을 만나주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요건이 배제되지 않도록 협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