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지사, 후분양제 적극검토… 정 의원 '주택법일부개정안' 입법건설사, 자금조달 분양가 적용 예고 "수요자 부담만 커지는 셈"
  • ▲ 영남권의 한 아파트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 영남권의 한 아파트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아파트 후분양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유력후보들과 시민단체서 후분양제 도입 문제를 또 다시 거론하고 있는 것.

    후분양제는 사업자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먼저 집을 지은 뒤 분양하는 방식으로, 지금처럼 아파트를 짓기 전에 미리 입주자를 모집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아파트를 짓는 선분양제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다만 두 제도 모두 장단점이 확실해 활성화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안희정 충남지사가 후분양제를 적극 검토 중이다. 부실공사나 분양권 투기 등을 야기한 선분양제 문제점을 차단하고, 동시에 '공급자→수요자'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정동영 의원(국민의당)은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대형건설사, 지방주택공사의 후분양제 의무화를 골자로 한 '주택법일부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

    정 의원은 "재벌(대형건설사)이 사내유보금 700조원을 두고도 선분양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경실련의 입법청원안이 공공주택 사업뿐만 아니라 재벌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후분양제 도입의 장단점 및 시장 영향에 대한 분석'이라는 연구용역에 나서면서 후분양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후분양제는 말 그대로 건설사가 집을 거의 다 지은 뒤 분양하는 제도다. 소비자가 지어진 아파트 외관이나 마감재 등을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있다는 점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후분양제 의무화' 움직임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는 그간 입주예정자로부터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조달한 공사비용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 경우 금액 규모가 만만치 않아 금융권에 손을 빌릴 공산이 큰데,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게 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늘어난 금융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얹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치권에서 대형건설사를 위주로 후분양제를 먼저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대형사들 불만이 더 커진 모습이다.

    대형사라고 하더라도 단기간 대규모 자금조달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권의 아파트 중도금대출 제한으로 1금융권에서 중도금 대출은행을 찾는데 어려움이 커진 만큼 후분양제 의무화는 더 큰 부담을 안겨준다는 이유에서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후분양제가 의무화되면 건설사의 자금조달 부담까지 분양가에 녹아들게 돼 결국 수요자들의 비용부담만 더 커지게 만들 것"이라며 "대형사라고 현금유동성이 좋은 것도 아닌데 대형사 위주로 이를 하라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자금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중견건설사들의 경우 주택사업에 나서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후분양제 시행으로 주택공급이 소수의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공사원가만 있다고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토지비와 금융비용 등이 다 포함된다"며 '이런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건설사가 아니라면 단 하나의 프로젝트만 잘못되더라도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후분양제 의무화를 둘러싼 시선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후분양제 의무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측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분양권 전매제한에 따른 투기 감소 등이 가능해 유용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가 수억,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상품(집)을 구입하면서 완성품도 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입주해보니 하자가 많거나 홍보와 다른 시공으로 입주자가 피해를 입는 것도 선분양제의 문제점이었다.

    경실련은 "주택은 소비자가 일 평생 구매하는 가장 비싼 물건이며 기본권인 주거권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소비재"라며 "후분양제 시행은 부실시공을 방지하고 분양원가에 적정이윤을 더한 분양가 책정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선분양제는 직접 지어진 아파트를 구매하기 보다는 '미래'를 보고 미리 사는 방식이기 때문에 해당 아파트의 공사가 지연될 때도 그 피해를 수요자들이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브랜드 아파트라고 해도 부실시공 등 변수가 많은 만큼 선분양제는 이런 위험을 모두 감수하고 수요자들이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후분양제가 의무화되면 수요자들이 한 번에 많은 비용을 내야 해 오히려 주택구매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공사기간(통상 2~3년) 동안 조금씩 돈(중도금)을 냈지만, 후분양제에서는 짧게는 몇 개월 안에 비싼 집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는 "현재 우리 주택분양시장은 투자목적이 강하다"며 "후분양제는 돈 있는 사람이 주택구매에 유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블랙마켓'을 만들게 될 것이다.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초반 분양권이 지금보다 더 올라서 돈이 부족한 수요자들의 기회는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계약하고, 중도금 치르고, 준공 기간 동안 나머지 잔금을 지불하는 선분양제가 오히려 수요자들에게 비용부담이 덜할 수 있다"며 "한 번에 수억원의 비용을 낼 수 없어 주택을 구매하는 이들이 줄어들 경우 미분양이 늘어 결국 주택시장 침체는 물론, 건설사 부도라는 극한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후분양제 논의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도 있었다. 당시 후분양제 도입 이유로는 "선분양제는 건설자금 조기 확보를 통해 주택공급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소비자의 주택선택권을 제한하고 투기적인 수요를 유발하는 등 부작용도 크다"고 밝혔다.

    특히 건설업계의 자금난이 우려되는 점을 고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법 개발·지급 보증 △장기 주택자금 지원 인센티브 마련 등 제도 개선도 검토했다. 하지만 건설비용이 늘어나고 서민들의 주거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