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버즈워드] 캣 허딩…각기 다른 일들을 한꺼번에 하는 어려움

2000년, 당시 '칸 국제광고제'라 불리던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한 편의 필름광고가 은상을 받았다. “고양이 치기(Herding Cats)”라는 제목의 이 필름광고에서는 미국 남부 억양을 쓰는 ‘터프’한 카우보이(?)들이 조상 대대로 해온 그들의 고양이 치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보람차면서도 힘든지 이야기한다. 이 엉뚱한 광고는 EDS(Electronical Data System)라는 회사가 정보와 아이디어, 기술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일들을 한꺼번에 하고 있는 상황을 “고양이 치기”에 빗댄 것이다. 


고양이 치기라는 말의 시조는 1979년 괴짜 영화감독 테리 길리엄(Terry Guillium)이 영국의 쉬르레알리즘적 코미디언들의 모임인 몬티 파이선(Monty Python)과 함께 만든 영화에 최초로 나온다. 불경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상영이 금지되어왔던 이 영화 “브라이언의 삶(Life of Brian)”은, 양치기들이 얼토당토않은 잡담을 하느라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놓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거기서 나온 대사가 바로 “고양이 한 무리(a herd of cats)들이 털 깎이려고 기다리는 모습을 생각해봐. 야옹 야옹 와 와 와….”다. 길들이기 힘들고 순종적이지 않은데다가 성격마저 제 각각인 고양이 무리를 양떼 대신 치는 걸 상상한 것이다. 

이 영화가 정말로 ‘고양이 치기’라는 말의 시초였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이후 고양이 치기라는 말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발간된 책 중엔 “고양이 치기”라는 말이 제목에 사용된 경우만도 여러 권이다. 너무 자주 사용되다보니 “2017년 그만 듣고 싶은 버즈워드” 목록에 들어갈 정도. 

그리고 2014년, 미국에선 “고양이 치기: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대한 전략적 접근(Herding Cats: A Strategic Approach to Social Media Marketing, Andrew Rohm 저)”이라는 책이 발간됐다. 소셜미디어를 마케팅 플랫폼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마케터들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 콘텐트를 제작하는 요령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고양이 치기'란 표현이 너무 많이 사용되어 식상하다 해도, 소셜미디어 상의 소비자들을 관리하는 상황을 빗대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상으로 만나는 소비자들은 고양이 품종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자신의 소셜미디어 공간에 브랜드가 침범하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별로 따지지 않고 너그럽게 좋아요를 누르거나 황송하게 공유까지 해주는 소비자도 있다. 동영상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이미지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있다. 거리낌 없이 댓글을 남기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대단한 경품을 걸어도 절대 남의 계정 포스팅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비자도 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고양이 품종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인터넷에 떠도는 고양이 밈 중 하나. "좀 앉지. 그리고 왜 내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지 나한테 설명 좀 해보게."
    ▲ 인터넷에 떠도는 고양이 밈 중 하나. "좀 앉지. 그리고 왜 내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지 나한테 설명 좀 해보게."

    요즘 대부분 브랜드들은 여러 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관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관리? 그림 좋은 것 좀 올리고 카드뉴스 만들어 올리고 신제품 나올 때마다 포스팅하고, 노출 수 올리게 돈 좀 내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각 소셜미디어마다 최적의 콘텐트 형식이 있으며, 이용자들마다 선호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통일성 있는 브랜딩 플랫폼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한 브랜드가 동일한 형식의 콘텐트를 모든 소셜미디어에 똑같이 올린다면 곤란하다. 


  • 고양이는 온갖 재미난 동영상과 밈을 통해 전세계 인터넷을 ‘정복’했다. 도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는 예상 못한 엉뚱한 행동이나 모습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관리자는 그러나 고양이처럼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마냥 즐거워할 입장이 아니다. 양떼를 몰듯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자들을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셜미디어들이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분석도구를 제시해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반응을 수치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분석도구의 수치들을 읽고 해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브랜드들의 몫이다. 하지만 슈로딩거의 고양이란 양자역학 이론처럼, 어떤 콘텐트에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스스로를 '고양이 집사'로 표현한다. 브랜드들도 충직한 고양이 집사가 되어 고양이 주인님들의 변덕에 수시로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