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버즈워드] 진정성(Authenticity)

[마케팅 버즈워드] 진정성(Authenticity) 

마케팅 관련 프리젠테이션이나 피치 때 헤아릴 수 없이 자주 사용되는 버즈워드 중엔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적 마케팅(Spiritual Marketing), 영혼기반 마케팅(Soul-Based Marketing), 의식적 마케팅(Conscious Marketing)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근래 더욱 자주 사용되는 진정성 마케팅(Authentic Marketing), 혹은 진정성(Authenticity)도 그 중 하나다. 

이 글에서 편의상 진정성이라고 번역한 이 ‘Authenticity’의 사전적 정의는 “진짜임”이다. 기업, 혹은 브랜드의 영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제는 모든 기업들의 필수 활동이 되다시피 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거론될 때마다 앞에 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진짜(authentic)’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그 기업의 진짜이며 실체란 말인가?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효시는 근대 서양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위 인본주의라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으며 조직이나 사회의 일원으로만 자신을 인식하던 사람들이 자의식을 키우기 시작했다. 철학자들은 서서히 종교나 국가, 사회의 규범을 따르는 ‘성실한’ 사람들을 어리석은 노예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문학적으로 낭만주의에 해당하는 18세기 백과전서파로 유명한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저 '라모의 조카(Le Neveu de Rameau)'는 인간의 자의식이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묘사했는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16년 전에 발간됐다.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 다시 말해 인간의 진정성은 집단의 일원이 아닌 개인의 내면에 있다고 믿어왔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집단이나 조직인 ‘기업’ 혹은 ‘브랜드’에게 있어서 ‘진정성’이란 건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진정성이 주로 CSR과 연관돼 사용된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다. 기업에게 만일 자아가 있다면 그 자아는 이윤추구를 존재의 최고가치로 여길 터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마이너스 ROI(투자자본수익률)가 분명한 사업이나 캠페인을 수시로 집행한다. 오로지 이윤추구보다 소비자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진정성의 본래 의미와 정면대치 하는 위선적 행위다. 50년대 미국 담배회사들처럼 담배 피는 모습이 쿨하고 멋지다고 광고하거나 과학자들을 매수해 흡연이 건강에 좋은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기업에게 있어 진짜 ‘진정성’ 있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어떤 기업이 경영에서 일관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취하거나 뛰어난 PR 전략을 통해 그 기업의 ‘어두운 면’을 미디어에 들키지 않도록 잘 감춘다면, 그 기업은 진정성 있는 기업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진정성 있는 마케팅이란 결국 탁월한 위선(僞善)인가? 주류 매체에 대한 저항을 기치로 삼은 ‘대체 언론’ 바이스(Vice)가 루퍼트 머독에게 두 차례에 걸쳐 주식을 거액에 넘기고도 여전히 혁신적이고 저항적인 언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기업의 이윤추구가 ‘착한’ 기업 되는 것보다 부차적인 문제라면, 차라리 진정성보다는 오히려 일관성(consistency)이나 완전성(integrity)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럼에도 기업들이 여전히 ‘진정성’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사람들에겐 배려와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진정성이란 어휘는 기업을 인격화하는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업에게 배려와 사랑을 받는단 느낌을 받게 한다. 두 번째는, 이 ‘진정성 있는 척’하기가 따지고 보면 이윤추구라는 기업 본연의 ‘진정성’을 추구하는데 매우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생존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B2B와 B2C로 구분하던 시대를 넘어 H2H 마케팅 시대로 진입하며 기업은 더욱 더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인격화된 기업들이 지금 생존을 위해 '진정성'을 기치로 이타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