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산책] 알리앙스 프랑세즈 싱가포르 광고 by Ogilvy & Mather, Singapore


한 사람의 프랑스인이 미국의 프로듀서들과 한 사람의 유명 여배우를 찾아간다. 프로듀서와 여배우는 모두 실제 할리우드의 거물들. 워터월드, 케이블 가이의 앤드류 리츠(Andrew Licht), 인디펜던트데이, 300의 윌리엄 페이(William Fay), 뮤직비디오 프로듀서 잭 호건(Jack Hogan), 그리고 레인맨, 어메리칸 그래피티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린 마리 스튜어트(Lynn Marie Stewart)가 모두 촬영에 응해 이 프랑스인의 영화 시놉시스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이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클래스(Entre les Murs)’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La Vie d’Adèle)’, 그리고 ‘아무르(Amour)’를 거절한다. 영화감독을 가장한 이 프랑스인이 브리핑한 것들은 사실 이미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할리우드 ‘쇼비즈니스’ 사업가인 이들이 보기에 클래스나 블루, 그리고 아무르의 시놉시스에는 액션도, 갈등도, 악당도, 긴장감도, 행복감도 없다. 그리고 그런 액션이나 갈등, 악당, 긴장감, 행복감은 흥행성공의 필수적 요소다.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최대한 예의를 차리지만 프랑스인이 만들겠다고 하는 영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들이 과연 단지 ‘무식해서’ 걸작이 될 이 소재들을 거절한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고비용 – 고수익 구조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영화는 ‘최대관객의 최대만족’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불치병' 걸린 아이도 없는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클래스)나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하필이면 다른 젊은 여성을 통해 찾는 과정(가장 따뜻한 색 블루), 80세 노인이 죽음을 맞는 모습을 한 시간 반 동안 지켜볼 관객이 많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윌리엄 페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건 쇼비즈니스에요. 당신 영화엔 비즈니스가 없어요.”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문법에는 일정한 틀이 있다. 장르 시스템으로 인해 할리우드 영화에서 작가들이 개개인의 고유한 색깔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여러 명의 전문 시나리오작가들이 ‘최대관객의 최대만족’을 지향하는 완벽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투입된 자본이나 감독들은 이를 더욱 더 ‘모난 데 없이’ 매끄럽게 다듬는다. 개봉기간이 방학기간인가, 휴가기간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연극이 그랬던 것처럼 할리우드영화는 일종의 제전(祭典)이 되어가고 있다. 

17세기 라신이나 코르네유가 쓴 프랑스연극은 줄거리만 본다면 고대그리스나 로마의 연극을 프랑스어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연극을 사람들이 즐긴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 곳에 모여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종교의식과도 같다. 성경에 의하면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신도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했다. ‘성령 충만’이라는 감정을 공유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17세기 고전연극은 사실 일종의 종교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다만 성령이 아닌, 고통과 슬픔과 기쁨 같은 인간적 감정을 ‘섬겼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이 점에서 17세기 서양고전연극의 맥을 같이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여야 하며, 모두가 지향하는 감정을 느껴야 한다. 구성 역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기승전결 방식을 따라야 한다. 아니면 ‘신도’를 잃고 만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온 ‘이단’들이다. 이 문화적 이단들은 다른 형식과 다른 문법, 다른 카메라워크, 다른 감정교감을 원한다. 영화는 물론 뮤직비디오, 텔레비전 시리즈 등 콘텐트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사람들마다 각자 하나 이상 모바일이나 태블릿 같은 스크린을 갖게 되었는데, 이 ‘이단’들이 참가할 제전, 즉 콘텐트는 오히려 줄어가는 것만 같다. 이들에겐 대형자본들이 만든 익숙한 의식(儀式)이 그다지 은혜롭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단’들이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프랑스 영화다. 

물론 프랑스영화라고 해서 모두가 독립영화고, 모두가 독특한 것은 아니다. 대형자본이 프랑스영화계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한 지 30년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프랑스영화는 어딘가 전세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가르치는 프랑스어 신세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프랑스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두루 받아들여 문화적으로 심오하고 어휘가 풍부하며 아름다운 발성과 문장을 자랑하지만, 퀘벡과 아프리카 일부 영향력 없는 나라들의 공식언어이자 유엔 공식언어 중 하나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영화가 영화종주국으로서 현재와 같은 영화의 형태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자국 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제까지 도입하면서 애써왔지만 결국 할리우드영화에 밀린 것처럼. 

그래도 싱가포르의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프랑스영화를 제공하는 시네클럽을 광고하기 위해 만든 이 영상을 보고 행여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들을 비난하지는 말자. 프랑스영화의 시놉시스를 그들에게 피치한다는 건 바티칸 교황에게 티벳불교를 전도하는 것과 다름 없다. 거대예산 영화가 늘어날수록 다양성이 줄어드는 건 수학적으로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종교에도 자유가 보장된 이 세상에 문화적 이단들이 누릴 콘텐트가 점점 더 줄어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싱가포르 오길비&메이터가 대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