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2만2600건 중 전문위 부의 안건 고장 14건 불과기업 합병 60여건 중 전문위 부의 SK건 유일"투자위 진지한 검토 선행 당부…특검 '의혹제기식' 주장 사라져야"


  •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삼성의 청탁을 받은 청와대가 보건복지부에 지시를 내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열리지 않도록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은 상급기관이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 영향력을 받고 있다. 때문에 특검은 국민연금의 물산 합병 찬성에 복지부가 개입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삼성→청와대→복지부→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뇌물고리도 이런 주장으로 만들어졌다.

    복지부는 실제 국민연금에 투자위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수 차례 지시한 바 있다. 조남권 전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과 최홍석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신사동 국민연금 사옥을 찾아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 등에게 투자위에서 결정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홍 전 본부장은 이날 대화에 대해 "투자위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판단하기 곤란할 경우 전문위에 부의하는게 맞다는 지시를 받았다"며 "투자위에서 결정하라는 뉘앙스로 읽었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증언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복지부가 개입했다는 정황으로 제시되며 특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복지부가 물산 합병 찬성을 지지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검의 주장은 국민연금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의혹제기식 주장에 불과하다는게 삼성 측 변호인단의 반박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전문위는 투자위의 의결이 난항을 겪거나 곤란에 빠졌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최된다. 국민연금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할 경우 외부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는 기금자산의 수익성과 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투자위와 달리 전문위는 사회적 분위기를 더욱 고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판단은 투자위에서 결정되고 보조적 수단으로 전문위가 활용됐다. 

    2006년부터 10년간 국민연금이 의결한 2만2600건 결정 가운데 전문위에 부의된 안건은 14건에 불과했다. 기업 합병과 관련된 60여 건의 안건 가운데 전문위에 부의된 건 SK와 SK C&C 합병이 유일했다. 

    이마저도 '합병 취지나 목적에는 공감하나 시너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고, 합병 비율과 시점 등을 고려할 때 일부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있다'는 이유로 반대 결정을 내려 논란을 빚었다. 재무적 가치보다 비재무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할애해 결국 기금자산에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안건의 경우 국민연금의 지분이 크지 않았고, 의결권 행사가 주총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아 전문위 부의도 큰 관심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은 규모나 중요도에서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와 제일모직 지분 4.8%를 보유하고 있었다. 합병일을 기준으로 각각 1조2200억원, 1조1800억원의 주식을 보유한 셈이다.

    국민연금 실무자들은 부담을 느꼈다. 특히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판을 받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홍 전 본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합병에 찬성하면 대기업인 삼성의 편을 든다고 비판받을 것이고, 반대하면 해외 투기자본 편을 들었다고 매국노 이완용 취급을 받을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지배구조원과 서스틴인베스트, ISS에 자문을 의뢰했고 내부적인 검토도 병행했다. 국민연금은 자체적으로 1:0.46이라는 적정합병비율을 산출해 삼성에 중간배당금을 요청하는 등 기금자산의 수익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 복지부에 전문위 부의 필요성을 꾸준히 어필했다. 전문위가 개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결과다.

    그럼에도 이면에는 운용역이라 수익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잘못된 결정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배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셈이다. 부담을 전문위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국민연금 실무자들 사이에 공유됐다.

    복지부가 제동을 걸었다. 조 전 국장이 무작정 전문위에 부의하지 말고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연금 내부에서 판단하라고 지적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조 전 국장의 발언을 압력 또는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국민연금 관계자들이 '투자위에서 결정하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였다'고 입을 모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조 전 국장이 투자위 결정을 권유했을 뿐 찬성을 유도하지는 않았다는 부분이다. 투자위 결정도 조 전 국장의 생각이었을 뿐 청와대의 개입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투자위 결정은 객관성을 띄게 됐다. 위원들이 국감이나 감사원의 감사를 피할 수 없게 됐고, 투자자국가소송(ISD)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홍 전 본부장은 지난 21일 열린 31차 공판에서 "합병에 찬성한 것은 부정한 청탁이나 압력 때문이 아닌 기금자산의 증식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합병이 무산될 경우 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1심에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다만 실형을 선고한 형사합의 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국민연금의 손해액만 따졌을 때는 무죄를 선고해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한 기업가치는 평가시점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나올 수 있어 합병비율의 차이만큼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불리한 합병비율을 수용해 국민의 세금 1380억원이 날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는게 변호인단의 반박이다.

    국민연금 실무진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문위에 합병안을 부의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금이 해외 투기자본 편을 들어 수 천억원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 어떤 비판이 나올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삼성 변호인단은 "엘리엇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삼성물산 합병은 큰 문제 없이 통과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검이 주장하는 합병비율의 부적절성 등은 엘리엇이 등장하며 제기된 문제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서 실제 손해를 봤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