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전문가가 심사? 지역주민 4천억 투자 무산 반발 에너지 공기업 줄적자 우려
  •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비용, 보상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이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 뉴데일리


에너지 정책이 정권따라 휘청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 기조를 중심으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의 일시중단을 선언했다. 동시에 향후 3개월 간 원전 건설 백지화 여부를 따지기 위한 공론화 작업에 들어섰다.

박근혜정부서 추진하던 에너지공기업인 남동발전·동서발전의 상장도 지연될 전망이다. 새정부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한 마당에 두 발전사가 상장을 추진했다가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어떻게 하루 아침에 8조원 사업을 접느냐"면서 "정부 마음대로 국책사업을 순식간에 뒤집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일체 관련 절차를 생략한 채 일시중단을 선언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 "어떻게 하루 아침에 8조 사업을 접느냐"

신고리 5ㆍ6호기의 총사업비는 8조6천억원이다. 이중 약 60%인 4조9천억원에 관한 사업계약이 체결됐다. 또 1조6천억원은 공사대금으로 지불된 상태다. 건설 중단 때는 한수원 뿐만 아니라 신고리 사업에 관련된 기업들의 피해도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한수원 측은 "정확한 손실 규모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의 원전 건설 중단 움직임에 울산시 울주군 일대 주민들은 범군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소송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28일 범군민대책위는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원전 건설 중단은 안전상의 문제나 절차상의 문제 등을 제외하고는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이 행정명령은 법을 무시한 처사"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애당초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를 약속했다. 한수원은 지역 지원 및 기반시설에 460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작업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백지화 수준에 들어간 것이란 시각이 압도적이다. 

  • ▲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을 비롯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는 16일 울산시청 정문앞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을 비롯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회는 16일 울산시청 정문앞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비용, 보상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이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이른 시일은 채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까지 4년여 소요된 것에 비하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원전 건설 허가를 받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은 56건의 대책안을 제출하는 등 원전운영 정보 공개도 약속했다. 

    정부가 3개월 간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명분쌓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정부가 방향은 다 정해두고 시한부 여론쌓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공사중단을 발표하며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사실상 원전 폐기 수준"이라며 "국가적으로 중대한 에너지 정책 사안에 대해 전문가를 배제하고 비전문가 중심으로 여론재판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공기업 피해액 눈덩이…적자기업 눈앞에 

    올해 안에 상장을 계획했던 남동발전과 동서발전도 이를 미루기로 했다. 에너지공기업 상장은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 중 하나로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투명성 확보,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총 8곳의 에너지 공기업의 순차적 상장을 발표했다. 

    그 첫 주자로 남동발전과 동서발전이 예정돼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의 노후 화력발전 폐지 정책에 꽉 막혀버렸다. 내년께 상장을 준비하던 남부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한수원, 한전KDN, 한국가스기술공사 등의 기업공개 준비도 모두 '멈춤' 상태가 됐다.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책으로 30년 이상된 석탄화력발전소 10기 중 8기에 대해 6월 한달간 가동을 중단하고 임기내 모두 폐쇄한다는 계획이다.

    화력발전소를 폐쇄 때 발전사들의 매출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원전까지 축소된다면 에너지 수급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28일 기준으로 정부가 내놓은 전력 수급 대책은 전무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력소비는 50만GWh에 달했다.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1기의 발전 설비용량은 약 9.1GW로, 12년 뒤에는 원전 전체 설비용량(22.5GW)의 40%가 부족해지는 실정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법원이 가정용 전기료에만 누진제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처음으로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다섯차례 재판에서는 한국전력이 승소했으나 새 정부들어 첫 관련 소송에서 소비자가 승리했다. 앞으로 남은 소송에서 소비자 승리가 계속될 경우 한전의 누진제 역시 추가 개편 요구가 커질 공산이 크다. 한전은 지난해 6단계이던 누진제 구간을 3단계로 간소화했다. 

  • ▲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 문제 공론화 추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 문제 공론화 추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에 대한 전력수급 대책도 없이 무작정 탈원전만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탈원전 전력수급 대책이 있느냐"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정부가 탈원전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거기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문제는 어떻게 되는 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 원전 드라이브에 공기업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정부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는 입장이지만 당장 사업 변경에 따른 뒷수습과 실적 악화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관계자는 "관련 공기업들은 적자기업으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면서 "자연히 성과급도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원전 정책 변화해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국책사업을 건설 중에 있는 원전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