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학생실습 시절 신생아실을 돌면서 본, 아직도 머릿 속에 기억이 생생한 미숙아가 있다. 

미숙아 중에서도 23주~28주 사이에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초미숙아들은 인큐베이터에서 집중 치료를 받게 된다. 엄마의 자궁 안에서 고작 20여 주를 보내고 이 세상에 나온 초미숙아, 그 초미숙아는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어떻게 울어야 관심을 가져 주는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지속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 마치 그 아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우리 조 실습생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배 속 양수 안에서 하나의 라이프 사이클을 돌며 아기들은 어머니의 몸을 통해 온갖 것을 익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을 습득한다. 다만 이 낯선 세상에 나와 새롭게 적응하느라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 보일 뿐이다. 

  • 우리는 살면서 종종 ‘운명’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앞에 움츠러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똑같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기적적으로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운명이자 팔자일 수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 중에 다른 결과가 나온 경우, 이유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평상시 운동을 안 한 사람과 운동을 통해 몸의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정확한 몸놀림으로 적절하게 몸을 틀거나 반사적으로 반응한 사람의 결과는 충분히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암, 혹은 괴질, 중병에 걸릴 운명을 바꿀 방법이 있을까? 의학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면서 암의 조기 진단 및 완치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질병이 발병하기 전에 우리 몸은 이미 수차례 다양한 신호를 보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심했기 때문에 결국 질병으로 발전하고 만 것이다. 우리 몸이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올 때 이 신호를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몸은 나에게 대체 어떤 신호를 보낼까? 

    많은 신호가 있겠지만, 오늘은 세 가지 신호, 즉 통증, 갈증, 허기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첫번째, 통증은 ‘쉬라는’ 신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증은 쉬면 사라진다. 


  • 하지만 우리는 쉬는 대신 통증을 없애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진통제와 침술이다. 진통제를 먹거나 침을 맞으면 통증이 사라진다. 하지만 통증이 없어졌다고 해서 통증을 유발한 원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통증이 없어지면 병도 나은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약을 먹고 침을 맞아서 덜 아프게 되면 쉬지 않고 움직이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병은 더 진행된다.통증이 있을 때 진통제를 먹거나 침을 맞는 것은 괜찮다. 다만 그렇게 해서 아프지 않게 되었다면 그 상태로 쉬어야 한다. 아프지 않다고 해서 많이 움직이는 것이 가장 해로운 것이다.


    두번째, 갈증은 ‘물을 마시라’는 신호다. 

    그런데 현대인은 거의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현대인이 갈증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엄마 없는 아이와 같다.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돌보지 않으면 아이는 지쳐 더 이상 울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갈증 신호를 보내도 내가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몸은 어느 순간부터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만성 탈수라고 한다. 몸에 물이 부족한데도 목이 마르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만성 탈수 상태가 되면 몸 안의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게 된다. 

    건강해지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잃어버린 ‘갈증’을 되찾는 것이다. 하루에 2L 정도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정도로 물을 마시면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화장실에 가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아서 물을 적게 드시는 분을 종종 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하지 말고, 귀찮아도 꾹 참고 일주일만 물을 마셔 보자. 집 나갔던 갈증이 곧 돌아오게 될 것이다.

  • 셋째, 허기는 ‘밥을 먹으라’는 신호다. 이것 역시 현대인은 거의 느끼기 어렵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가 되어서, 습관적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밥을 먹기도 한다.음식을 적게 먹으면 끼니 전에 허기를 느낄 수 있다. 허기를 느끼고 허기가 가실 정도로만 먹을 수 있다면 위장을 위해서 참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듯 몸이 원하는 신호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면 몸이 진정으로 먹고 싶어 하는 것, 그 음식을 먹어 줌으로써 우리는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몸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우리 몸에서 보내는 통증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잃어버렸던 갈증과 허기는 꼭 되찾아 보다 활기 있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 몸에 갑작스런 재앙은 들이닥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적십자병원 병리과장(Ph D.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