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대가관계' 입증 실패…'靑 개입 없었다' 증언만 남아"


  •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지난 4~5일 이틀간 총 18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통해 겨우 마무리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5~36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로 공판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35차 공판의 경우 규모가 협소한 소법정에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법정 입구에는 방청객들의 가방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본격적인 증인신문이 시작됐을 땐 십 수명의 사람들로 법정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특검은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 등을 직접 기재한 '안종범 수첩'을 핵심 증거로 강하게 내세웠다. 총 63권의 수첩에 빼곡히 기재된 단어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공소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다.

    이를 증명하듯 특검은 수첩 원본 한장 한장을 제시하며 단어의 의미와 작성 경위를 확인했다.

    때로는 '빨리 받아적어야 했음에도 꽤나 상세하게 적었네요', '원래 이렇게 빨리 꼼꼼하게 적나요' 등 수첩의 증거능력을 높이려는 듯한 언사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휘날려 쓴 듯한 글씨체와 문맥상 연결되지 않는 단어가 알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이는 안 전 수석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수첩 내용의 작성 배경 및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전달한 지시의 의미에 대해 나름 상세히 진술하려 했지만, 작성자인 본인조차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더욱이 특검이 뇌물공여죄로 기소한 승마부분에 대해서는 수첩에 기재할 당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적었다'고 답해 수첩의 신빙성을 무색하게 했다. 

    그는 최순실과 정유라라는 이름은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으며, 수첩에 한 차례 기재된 '영재센터'에 대해서는 작성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반전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사라져갔다.

    삼성 측 변호인단 역시 이 같은 의문들을 중점적으로 겨냥하며 수첩의 증거채택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해당 수첩이 이 부회장 사건에 지대한 역할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특검 못지 않게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다만 안 전 수석이 알 수 없다고 답한 것에 대해선 관련 질문사항들을 모두 생략하는 등 수첩 내용이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로 작용할 수 없다는 자신감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실제로 안 전 수석은 특검이 수십 차례 공판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한 삼성물산 합병,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승마지원 등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특검은 이틀간 진행된 공판과정에서 63권의 수첩을 자신있게 내보였지만, 청와대와 삼성간의 부정한 청탁 및 대가성에 대해선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재판부 역시 안 전 수석의 수첩을 진술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했다. 범죄사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는 추측할 수 있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만큼 진술증거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국정농단 사태 및 삼성 뇌물사건의 정점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연달아 불출석한 상황에서, 안 전 수석을 상대로 한 혐의 입증은 수포로 돌아간 꼴이 됐다. 안종범 수첩이 결정적 증거 역할을 할 것이라는 특검의 기대감도 무너진 증인신문이 되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