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아베 나선 중·일, 반발짝 앞서… 文정부 만회 시동 환리스크 한국 유리…김현미 장관 현지 방문 검토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한·중·일 3국이 수주전을 벌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건설사업(이하 말~싱사업)의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며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에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다. 새로 확인된 환리스크(환차손실) 조건은 우리나라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견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여파로 움츠러들었던 정부 차원의 막후 지원도 다시 기지개를 켤 조짐이다. 지원사격의 수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하부 재정사업 중국·민자사업 환리스크 한국에 유리

    14일 한국철도시설공단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일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발주처협의체가 사업참여 희망자를 대상으로 말~싱사업 제2차 설명회를 열었다.

    말~싱사업은 말레이시아 구간 300㎞와 싱가포르 구간 30㎞를 고속철로 잇는 민관협력사업이다. 추정 사업비 120억 달러쯤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다.

    발주처협의체는 이번 설명회에서 사업 구조와 입찰제안요청서(RFP)에 담을 기술 수준에 관해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구조는 알려진 대로 상부(궤도·시스템·차량)와 하부(노반·건축), 운영사업으로 나눠 진행한다.

    발주처협의체는 상부사업은 예정대로 오는 12월5일 RFP를 제시하고 입찰을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하부사업은 재정사업, 운영은 민자사업으로 각각 진행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운영사업의 경우 관심을 모았던 최소수입보장과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태도다.

    말~싱사업 한국사업단 한 관계자는 "아직 사업의 방향성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이번 설명회가 전혀 영양가 없던 것은 아니다. 일부 새롭게 확인된 내용도 있다.

    우선 민자사업 발주와 관련해 AP(Availability Payment) 방식의 지급 화폐 종류가 정해졌다. 달러화가 예상됐지만, 현지 통화를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말레이시아는 링깃(1MYR은 265원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달러(1SGD는 825원쯤)를 기준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지난해 7월 민자사업 발주방식을 기존에 유력하게 거론되던 BOT 방식에서 AP 방식으로 바꿨다.

    BOT 방식은 사업시행자가 사업비를 조달해 건설한 후 자본설비 등을 일정 기간(30년) 운영하는 방식이다. 건설부터 운영까지 일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에 유리하다.

    AP 방식은 민간사업자가 일정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발주 국가가 운영수입을 보장하는 것이다. 가령 납품한 제품의 오작동률이 10% 이하를 유지하면 운영 기간에 일정 수준의 수입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으로선 위험부담을 낮추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AP 지급을 현지 통화로 하면 중간에 환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중국,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달러를 바꿀 때 원화보다 엔화나 위안화의 환리스크가 작은 편"이라며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 우리나라 사업자가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다면 이제는 삼국이 같은 조건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가 하부 건설사업을 나랏돈으로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선 불안요인이 커졌다. 가격 경쟁에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릴 수 있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중국이 싸게 입찰할 수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중국 수준의 가격에 맞출 순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그동안 현지화 전략으로 축적된 국내 건설사의 높은 인지도와 신뢰도 등 무형의 자산에 기대를 걸어본다는 구상이다.

    차량 성능과 관련해선 RFP 제시가 까다롭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발주처협의체로서도 세세하게 기술 수준을 정해주는 것보다 참여 조건을 열어두는 편이 입찰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지에서는 금융조건이 좋은 독일과 차량·시스템이 저렴한 스페인의 사업 참여설이 돌았지만, 소문에 그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일 3파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다.

  • 말레이시아에 마련한 한국철도 홍보관.ⓒ철도시설공단 블로그
    ▲ 말레이시아에 마련한 한국철도 홍보관.ⓒ철도시설공단 블로그

    ◇시진핑 국가주석·아베 총리 세일즈 외교 앞장… 국토부도 '시동'

    말~싱사업은 삼국의 장외 싸움도 무시하지 못할 관전 포인트다.

    특히 중국 수뇌부의 광폭 행보가 눈길을 끈다. 중국이 지난 5월 북경에서 연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회의에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도 초대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말~싱사업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나집 총리는 지난해 11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전통적인 우방국으로 분류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정치적으로 끈끈한 관계여서 (말~싱사업 수주 과정에서) 이 부분을 무시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6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를 만났다.

    신칸센의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가 지원사격에 열심이다. 리센룽 총리는 지난해 9월 외교수립 50주년을 맞아 일본을 방문했다. 아베 총리는 말~싱사업을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고속철 수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정상 세일즈 외교를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여파로 시국이 혼란하다 보니 정부 차원의 막후 교섭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대형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빅딜(맞교환)이 최종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업단 한 관계자는 "과거 프랑스 고속철 도입이나 두바이 건설 등의 사업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나 군부대 파병 등이 패키지로 묶여 처리된 경우가 있다"고 부연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박근혜 정부에서 강호인 국토부 장관(5월)과 최정호 제2차관(11월)이 각각 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방문했던 게 전부인 수준이다. 지원군의 무게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일각에서 지원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토부와 사업단에 따르면 사업이 중간에 취소돼버렸지만, 과거 MB(이명박) 정부에서 브라질 고속철사업 수주를 위해 브이아이피(VIP)가 움직인 사례가 있다.

    고무적인 것은 새 정부 들어 정부의 막후 지원이 본격화할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김현미 장관 부임 후 철도국에서 말~싱사업을 중요사업으로 보고했고 (김 장관도) 공감했다"며 "아직 구체적인 현지 방문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제안 사항을 짜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사업단 관계자는 "말~싱사업은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 고속철도 산업을 발전시킬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어느 정권에서 사업이 시작됐느냐는 중요치 않다. 경쟁국은 정부 요인들이 직접 움직이는 만큼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