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림·DY·아세아·삼보 등 4대기업 점유율 80% 골판지조합, 공정위에 '부당염매행위' 유권해석 의뢰

  • 공산품·농산물 포장용 박스인 골판지를 생산하는 업체들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원지(골판지 원재료)기업을 계열사로 둔 태림·DY·아세아·삼보그룹 등 4대 대형 제지회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전문적으로 골판지 상자만 만드는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대형 제지회사들의 우월적 시장 지위 남용 때문이라는 게 전문골판지포장기업들의 주장이다. 그런만큼 시장의 감시자·조정자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26일 전국 골판지·골판지상자 제조업을 소관하는 비영리단체인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골판지조합)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원지 시장에서 태림·DY·아세아·삼보 등 4대 대형 제지회사들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79.5%에 달한다. 전체 444만6326톤 가운데 353만5765톤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문골판지포장기업들이 4대 대형 제지회사들의 원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4대 대형 제지회사들이 일방적으로 원지 가격을 올리면서도 자신들은 골판지와 골판지상자 가격을 2~3개월 동안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가격 연동을 지체함으로써 전문골판지기업들의 판로를 막고 있는 셈이다. 부당염매행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해 7월과 올해 2~3월, 원지 가격은 펄프 수입가격과 폐지 가격 급등으로 각각 약 30%, 15~20%씩 인상됐지만 대형 제지회사들은 상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골판지기업들은 "대형 제지회사 갑질에 고사직전"이라고 하소연할 만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원자재 점유 비중이 60~80%에 달하기 때문에 원지 가격 인상은 즉각적으로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전문골판지기업들은 경영난이 누적돼 판산을 이르게 된다는 게 골판지조합 측의 설명이다.

     

    파산한 중소기업들은 다시 대형 제지회사들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그만큼 대형 제지회사들의 몸집은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DY의 경우에는 지난 2007년 청주판지, 2011년 삼화포장과 유니패킹, 2015년 태성산업과 대성산업을 각각 인수했다. 삼보는 지난 2007년 삼화와 한청판지·동진판지를, 2011년에는 아이팩을 사들였다.태림도 2007년 화천을 인수한 바 있다. 

     

    골판지조합 관계자는 "2006년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가 사라지면서 골판지원지업계는 경영난에 몰려 파산직전에 놓인 전문골판지기업 대부분을 인수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해 왔다"며 "현재는 4대 대형 제지회사들이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부당염매행위'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며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계열사를 위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답변서에서 "객관적인 자료 부족으로 염매 행위의 정도, 반복 가능성, 염매 대상 상품의 특성과 시장상황 등 구체적인 상황을 알수 없어 위반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골판지상자 주요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10~20%로 높지 않은 점, 수요처와의 협상력 차이로 즉각적인 상자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부당염매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 골판지포장 유통구조. ⓒ골판지조합
    ▲ 골판지포장 유통구조. ⓒ골판지조합

     

    이같은 답변에 골판지조합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원지 가격 인상과 그 계열사 제품의 가격 인상 시점을 일치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중소제조업계의 균형 발전과 생존권 확보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문제는 상생법으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문제는 하도급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러한 원자재 공급기업과 수요기업간의 불공정 문제는 다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이 때문에 갑질 행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어 시급히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