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외교부' 뒤늦은 대책 마련에, 업계 '회의적'이재용 구속, 해외 투자 제동… "반기업정서 아닌 대책 마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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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사진. ⓒLG전자


    "삼성·LG전자 세탁기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정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곤욕스럽지만,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국 기업을 돕는 그들을 보면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5대 그룹 임원)

    한국을 정조준한 미국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거세다. ITC는 미국에 수출된 외국상품이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국제무역 정부기구다. 지난 5일(현지시간) ITC가 중국에서 생산된 삼성·LG 세탁기가 자국 세탁기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제품에 대한 전방위적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 발동이 현실이 됐다.

    산업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는 '정부·업계 대책회의'를 열고 19일(현지시간) 열리는 2차 공청회 준비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 양사가 국내를 대표하는 전자업체가 엮인 만큼 정부가 나서 세이프가드로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이번 판정의 배경에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문제제기가 있다. 1911년 설립된 월풀은 2010년 세계 가전제품 업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삼성·LG전자의 경쟁력이 확대되면서 월풀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월풀과 국내업체의 악연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월풀은 2011년 한국에서 생산된 세탁기가 자국 세탁기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 상무부는 월풀의 제소에 반덤핑 관세 판정을 내렸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WTO 협정'을 들어 국내기업의 손을 들어주며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월풀은 2015년 12월 중국에서 생산된 한국세탁기에 또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미 상무부와 ITC가 월풀의 손을 들어주면서 문제는 확산됐다.

    우리 정부는 대책반을 꾸려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하지만 뒤늦은 대응에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통상압박이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간 이어져온 상황에서 정부의 한 발 늦은 대책마련에 기대는 낮은 상태다. 더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대표되는 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 맞춘 해외공장 설비 투자 제동, 일방적인 국가핵심기술 지정 검토 등은 자국기업을 보호하는 미국 정부와 대조적인 모습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제는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 배타적 움직임이 강화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FTA 체결로 인한 관세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어 배타적 움직임은 지양돼야 한다고 우려한다.

    이같은 상화에도 한미 FTA 개정, 세이프가드 등 국내 업체에 대한 통상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뒤늦은 대책마련과 발목 잡기식 제재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에 재계는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새 정부에 '유연한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미국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ITC의 판정에 대해 "세탁기를 골라주는 연방정부는 필요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언론의 비판에도 미국 행정부는 '자국 기업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내달 21일이면 ITC가 제재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한다. 관계부처의 대응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업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왠지 모를 씁쓸함과 부러움이 남는다'는 재계 관계자의 말을 되새겨볼 시점이다. 

    업계에서는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이 증명될까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능함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가 높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사회 전반에 퍼진 반기업정서가 아닌 자국기업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때"라며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응과 현명한 대책 마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