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대우·GS·롯데 등 정비사업 수주전서 두각까다로운 조건에 중견사는 입찰 참여도 '멀뚱'발주물량 감소에 “진입장벽만 더 높아질 것"
  • ▲ 지난 9월 진행된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시공사 선정 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 지난 9월 진행된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시공사 선정 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내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을 앞두고 발주가 몰렸던 정비사업 수주전이 막판까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연간 수주 순위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대형건설사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발주물량이 크게 줄어드는데다 대형사 선호도가 심화되면서다. 가뜩이나 신규 택지 감소로 또 다른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중견건설사 입장에서는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10월 말까지 4조6467억원의 수주액을 기록하면서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9월 서초구 반포1단지(1·2·4주구) 수주 한 방으로 2조6411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는 2위인 대우건설이 올 들어 정비사업에서 올린 전체 실적보다도 많은 액수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정비사업 수주 1위는 현대건설이 무난하게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남구 감만1구역(1조4821억원), 경기 과천주공1단지(4145억원) 등의 사업권을 따내면서 2위에 랭크된 대우건설 수주액은 2조5972억원으로, 3위 GS건설에 근소한 차이로 쫓기고 있다.

    GS건설은 서초구 한신4지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면서 총 수주액 2조4152억원을 달성, 서울 강남권 재건축 3연전 상대였던 롯데건설을 밀어내고 수주실적 3위를 차지하게 됐다.

    GS건설의 경우 연내 시공사 선정을 앞둔 안산주공5단지 1구역 재건축 사업 수주전에도 뛰어든 만큼 이곳을 수주할 경우 2위 자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의 공사비는 2150억원으로, 대우건설과 GS건설의 수주액 차이인 약 1700억원을 웃돈다.

    강남권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한 롯데건설은 1조8511억원의 수주실적으로 4위를 지켰으며, 5위에는 의왕 고천나구역 주택 재개발사업(1617억원)과 광주 계림2구역 재개발(1750억원)을 수주한 현대산업개발(1조6497억원)이 랭크됐다.

    이밖에 △SK건설 1조1559억원 △포스코건설 7500억원 △대림산업 5774억원 △현대엔지니어링 1442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비사업 수주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내 시공사 선정이 예정된 사업지를 두고 막판까지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예정된 곳은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안산주공5단지 1구역, 송파구 문정동 136, 강남구 쌍용2차 등이다.

    특히 반포주공1단지 3주구의 경우 공사비만 8087억원에 달하면서 올해 정비사업 수주전 순위를 확정짓는 승부처로 꼽힌다. 현재 현대건설·GS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롯데건설·현대산업개발·두산건설·한양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업권을 따낼 경우 현재 4위인 롯데건설은 2위로, 5위인 현대산업개발은 3위로 단숨에 올라설 수 있다. 이곳은 현대산업개발이 오랫동안 공들여 온 사업지로 알려져 있으며 12월17일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또한 다음달 4일에는 동작구 노량진7구역, 11일에는 은평구 수색13구역 재개발 사업이 각각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1236억원 규모의 노량진7구역에는 SK건설과 한진중공업이 맞붙었으며 수색13구역에서는 공사비 3194억원을 두고 현대산업개발-SK건설 컨소시엄이 태영건설과 대결한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택지 공급이 줄면서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초점을 맞춰 주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반포주공1단지 등 올해는 초대형 사업들이 시장에 쏟아졌고, 정비사업 시장에서 현대건설·대우건설·롯데건설의 상승세가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 ▲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성재용 기자
    ▲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성재용 기자


    다만 과열된 재건축 수주전이 시간이 지날수록 10대 건설사만의 리그가 돼 가고 있다. 중견사들도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뛰어들고는 있지만, 아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례가 없다. 강남권 재건축 조합이 입찰조건을 까다롭게 하면서 수주문턱을 높이고 있는데다 컨소시엄 형태의 참여도 불허하면서다.

    실제로 지난 8월 서울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사업 현장설명회에는 호반건설·반도건설·신동아건설·중흥건설·KCC건설 등 다수의 중견사들이 찾았다. 하지만 본입찰에는 GS건설과 롯데건설 2개 대형사만 참여했고, 중견사는 단 한 곳도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미성·크로바 사업뿐만 아니라 최근 시공사를 선정한 신반포13차·14차·15차 사업 현장설명회에도 다수의 중견사가 얼굴을 비췄으나,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중견건설 A사 관계자는 "시공능력평가순위를 제한하거나 입찰금 조건 등이 있다 보니 중견사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실제 재건축 사업 수준에 나서더라도 대형사에 비해 영업력이나 브랜드 인지도에 밀려 수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메이저 브랜드 리그'가 내년에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단 내년 정비사업 발주물량 자체가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비사업 수주전은 내년 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을 앞두고 강남권 재건축 조합들이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반대로 내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사업지들이 올해로 앞당겨 나오면서 수주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물량이 한정돼 있고, 고급주택 브랜드를 가진 대형사를 선호하고 있어 중견사의 진입 장벽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올해 7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물량이 내년에는 1조원대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비사업 비중을 키우려는 중견사들이 틈새시장을 찾기도 버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반경쟁방식에서 시평순위를 제한하거나 컨소를 허락하지 않는 입찰방식도 지적된다. 일반경쟁방식은 제한경쟁방식과 달리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조합에서 단독 브랜드를 선호하고 시평순위가 높은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려다보니 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대형·중견·중소건설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조합이 임의대로 조항을 넣어 진입장벽을 치고 있다"며 "정부가 법이나 제도 개정을 통해 관리·감독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에 일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기준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공정경쟁을 유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라 시공사가 부담해야 하는 보증비율이 늘어나면서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견사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브랜드와 품질 등으로 경쟁하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브랜드가 애매한 건설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될 수 있어 고민이 커지고 있다"며 "조합원들의 고급 브랜드 선호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