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항소심서 합병비율 문제 제기… "결정적 증거 없이 기존 판결 뒤짚어""법조계, '절차-정당성' 무시한 반쪽짜리 판결…비상식적 주장"


  •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의심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었는데도 합병비율 차이에 따른 손실액 1388억원을 상쇄하기 위해 합병 시너지 수치를 조작했다."(서울고법 형사10부)

    "합병 비율이 불공정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비율이 다소 불리했다고 해도 이를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

    2015년 7월 완료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고등법원이 사실상 마무리된 물산 합병 의혹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가 합병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물산합병 무효소송과 이 부회장의 1심 등을 통해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지난 14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1심과 같은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정 기업의 합병을 성사시킬 목적으로 주식 의결권 행사에 위법하고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결국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가액 불상의 이득을 얻게 하는 반면, 국민연금공단의 이익은 상실하게 했다"고 판결했다.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면서도 삼성물산 합병에 특혜를 준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재판부는 또 '국민연금이 적정 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판단했음에도 이보다 불리한 1대 0.35 비율로 합병하며 수천억원의 손해를 자초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한 손실액을 상쇄하기 위해 합병 시너지가 부풀려졌고,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당한 개입도 있었다는 의혹도 인정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합병비율과 시기, 평가손실 등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라는 반응이다. 특히 결정적 증거 없이 기존 판결을 뒤짚는 건 법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실형 5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합병 비율에 대해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합병무효 민사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6부도 합병의 정당성과 합병 비율의 당위성을 인정했다. 

    먼저 합병 비율과 관련해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176조의 5)을 준수한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상장법인의 합병비율 산출 방식대로 ▲최근 1개월 평균 종가 ▲최근 1주일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반영한 이상 위법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시너지가 부풀려졌다는 판단에 대해서도 단순한 가설에 불과하고 일축했다. 합병에 따른 손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합병 후 현재 보유가치'와 '합병을 하지 않았을 경우 현재의 추정가치 차이'를 평가해야 하는데 모든 과정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판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전문위를 열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추측에 지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위는 투자위의 의결이 난항을 겪거나 곤란에 빠졌을 경우 개최되는데 삼성물산 합병의 경우 투자위의 찬성 결정이 문제 없이 도출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투자위원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명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결에 특검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때문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항소심 판결문을 뇌물 혐의 입증 수단으로 제출할 전망이다. 여기에 청와대의 개입이 뇌물 공여를 입증할 대가관계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논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청와대의 개입과 합병 비율에 대한 민·형사 사건이 온도차를 보이는 만큼 이 부회장의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특히 원심이 물산 합병과 경영권 승계의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은 만큼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은 결국 삼성과 국민연금이 주가를 조작해 국민연금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결코 상식적인 주장이라 할 수 없다"며 "이미 수 차례의 재판 과정을 통해 문제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향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