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고대의료원 임협 중 압박-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는 '무리수'…부당개입 VS '을'의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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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재인 정부의 노동 친화적 정책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학병원 노사 문제에서 정치권이 잇따라 개입하는 것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21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대학병원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치권도 병원 노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어주며 사측인 병원을 압박하는 데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을지의료원, 고대의료원 임금협상 중 정치권 압박…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조와는 '엇박자'

    최근 들어 정치권이 병원 노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임금협상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 40일 넘게 노조가 장기파업 중인 을지대의료원이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보건의료노조와 공동으로 지난 20일 오전 보건의료산업 일자리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을지병원 노조 측은 토론회에 참석해 병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과 부당노동행위를 증언했다.


    토론회가 있던 이날 오후 을지의료원 노사는 임금협상을 위한 교섭을 재개했으나, 노사의 주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정치권은 고려대의료원(고대안암병원) 노사 갈등에도 개입,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해 병원 측이 노조의 활동을 불법사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당시는 임금 및 단체협상을 진행하던 시점으로, 일촉즉발 파업 위기 속에 의료원 측은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한림대병원 간호사 부당노동 의혹 등 대형병원들의 '갑질' 사례가 잇달아 사회 이슈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병원 고용환경이나 보건의료종사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권이 노조와 연대해 병원 측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폭로가 이뤄지면서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최근 있었던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앞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노조원인 흉부외과 김모 과장은 정의당 부산시당 측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의학원장 임상시험 비리사건을 폭로해 보복인사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해당 병원 노조의 주장은 이와 상반됐다. 대다수 의학원 노동자가 소속된 원내교섭단체 노조는 오히려 폭언 등 김모 과장의 행실로 인해 많은 노조원들이 고통받았다면서 의학원 반박에 힘을 실어줬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의당 부산시당 측은 기자회견장을 빌려줬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 또한 "브리핑룸을 빌리기 위해 함께했던 것일 뿐 정의당의 지원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도넘은 간섭이냐, 합리적 개입이냐


    최근 대학병원 전공의, 간호사 등 부당노동행위 사례가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취지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같은 정치권 개입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노사 당사자 간 임금협상에 정치권 등 외부의 지나친 개입이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노사 임단협에 수년간 참여해온 A상급종합병원 보직자는 "병원이 노조원들에게 갑질을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병원도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노조가 주장하는 것처럼 병원도 주장하는 바와 입장이 있는 것"이라면서 "현재의 노동단체들이 이미 정치세력화된 것은 사실이고, 일부 국회의원을 통한 압박들이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사립대학병원이라고 해도 국회에서 압박이 들어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특히 현정부의 정책기조도 노동계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마치 노조의 주장은 다 옳고 사실인 것처럼 호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편에서는 정치권의 개입이 의료원 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노조원들의 절박함을 방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 을지병원지부 차봉은 을지병원 지부장은 "그동안 노조가 깨지고, 20년 만에 다시 생기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당노동행위가 있어왔지만 의료원 측은 잘못된 일들을 당연한 일인 것처럼 고착화해왔다"면서 "시정을 촉구하고 부르짖어도 의료원은 무시로 일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 지부장은 "의료원 내부적인 사정을 외부에 공론화하는 과정이 우리 역시 뼈아프고 안타깝다"면서도 "사측이 노조의 목소리를 진정성 있게 들으려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는 결국 우리는 관청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