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제정책방향, 7년 만에 '2년 연속 3%대 성장' 높은 반도체 의존도 불안요인… 내수·투자심리 위축하는 정책 문제
  • ▲ 경제성장.ⓒ연합뉴스
    ▲ 경제성장.ⓒ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27일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을 전망인 가운데 7년 만에 '2년 연속 3%대 성장'을 이정표로 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밋빛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깜짝 성장의 동인을 내부 자생력보다는 글로벌 호황이란 외부 요인에서 찾을 수 있고, 반도체 등 몇몇 효자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는 견해다.

    ◇3%대 성장·무역 1조 달러·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청신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정책협의회를 열고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당정은 일자리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내년부터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원칙과 함께 2년 연속 3%대 성장률을 이어가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앞선 7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도 내년 우리 경제가 3.0% 성장할 거로 내다봤다.

    당정이 잡은 목표대로 우리 경제가 내년 3%대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2010년 6.5%, 2011년 3.7% 이후 7년 만에 2년 연속 3%대 이상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분기에 최소 0.02%만 성장해도 연간 성장률 3.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에 투자가 다소 둔화하지만, 일자리 확대와 임금 상승 등으로 소비가 개선될 거로 전망한다.

    일자리는 공공·민간부문에서 36만명쯤 증가하고 물가는 유가와 농축산물 가격 안정으로 1.8% 성장할 거로 추산했다.

    다만 건설투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로 말미암아 둔화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21일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내년 북한 리스크와 같은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글로벌 교역 호조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변수로 보호무역 움직임과 주요국 금리 인상 등을 꼽았다.

    이 총재는 올해를 대통령 탄핵사태·북한 위험 증대·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불확실성이 컸던 한해로 진단하고 "글로벌 경기회복 흐름을 활용해 세계 주요 수출국 중 최고 수출증가율을 달성한 기업들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평가했다.

    올해 1~9월 수출증가율은 우리나라가 1.8%로, 중국·미국·독일·일본 등 10대 주요 수출국 중 가장 높다.

    지난 14일에는 연간 무역 누적액이 3년 만에 1조 달러를 돌파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했다. 일각에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 ▲ 수출용 컨테이너.ⓒ연합뉴스
    ▲ 수출용 컨테이너.ⓒ연합뉴스

    다른 기관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도 낙관론이 우세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업연구원 등이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지난 13일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3.0%로 제시했다. ADB는 최근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해빙 무드로 수출 확대, 관광산업 회복이 기대된다고 봤다.

    외국계 투자은행 중에선 골드만삭스와 바클레이즈가 3.1%, BoA메릴린치와 UBS가 3.0%로 각각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전망했다.

    ◇성장률 견인 '반도체' 고점 논란에 불안… 하루 새 시총 13조 증발

    일각에선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 등은 정부 바람과 달리 내년 경제성장률을 2.5~2.8%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은 21일 내놓은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수출과 소비의 증가에도 투자가 크게 둔화해 성장률이 2.8%를 기록할 거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늘고 최저임금 상승과 복지지출 확대로 가계 소비여력이 높아질 거로 예상했다.

    반면 건설·설비투자는 정부의 SOC예산 감소 등으로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깜짝 성장의 동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내적 요인보다 대외여건 변화에 따라 좋아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우리 경제는 3분기 들어 깜짝 성장했다. OECD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현재 3분기 성장률이 나온 22개 회원국 중 한국은 앞 분기 대비 1.4% 성장하며 2위에 올랐다. 1.5%로 1위를 차지한 라트비아가 지난해 회원국으로 신규 가입했음을 고려하면 기존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셈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지난 10월 3분기 경제성장률(앞 분기 대비)을 0%대 중반으로 전망했다. 2분기(0.6%)와 비슷한 수준에 그칠 거로 내다봤다.

    생산과 소비가 들쭉날쭉한 데다 설비투자는 7월(-5.1%)과 8월(-0.3%)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보여 이런 우려를 키웠다.

    반전은 수출에서 일어났다. 산자부에 따르면 11월 말까지 수출액 누계는 5248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5% 증가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배경에는 반도체·석유화학·철강 등 13대 주력품목의 선전이 있었다. 특히 반도체·일반기계·석유화학·석유제품·컴퓨터 등 5개 품목은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11월 한 달간 일반기계는 46억5000달러를 수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도 95억7000달러로 역대 2위를 나타냈다. 삼성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인텔을 누르고 매출 1위를 차지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에 걸쳐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게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 ▲ 반도체.ⓒ연합뉴스
    ▲ 반도체.ⓒ연합뉴스

    문제는 우리 경제구조가 반도체 등 일부 효자산업에 성장률을 많이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고점 논란에 휩싸여 주가가 부진하면서 코스피를 끌어내리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의존 비율이 높으므로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 때문에 전망치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1일 코스피는 전일보다 1.72% 내려간 2429.83에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3.42%와 3.87% 하락하며 지수 하락을 견인했다. 두 기업은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3조5000억원이나 증발했다.

    전자업계는 내년에도 반도체 호황이 계속될 거로 전망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D램 등 반도체사업이 공급 증가로 정점에 근접했다며 삼성전자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이른바 고점 논란이 다시 불거진 배경이다.

    미국 미디어그룹 블룸버그는 지난 13일 "한국의 반도체사업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하고 있으나 다른 산업의 취약점과 부족한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를 가리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보도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9%쯤이었으나 올해는 11월 현재 16.8%까지 치솟았다. 올해 수출 증가의 품목별 기여도에서 반도체 비중은 42.9%를 차지한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의 투자심리를 위축하는 경제정책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차 석유파동과 IMF 외환위기를 제외하고는 세계 평균성장률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전 세계 경제의 확장국면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경제심리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확실하게 쏟아붓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 정부는 내수시장을 죽이는 정책을 편다"며 "소득주도 성장은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정책은 내수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부연했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나 홀로 증세 역주행을 하는 것도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20일(현지시각) 감세법안이 상원을 찬성 51표, 반대 48표로 통과했다.

    세제개편안은 현행 최고 35%인 법인세율을 21%로 낮추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내리는 내용이 뼈대다.

    일본도 최근 임금 인상이나 설비투자에 적극 나서는 기업에 법인세를 낮춰주기로 방침을 정했다.

    프랑스도 현행 33.3%인 법인세율을 앞으로 5년간 단계적으로 25%까지 낮출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현행보다 3%포인트(P) 높은 최고 25% 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보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4%P 높아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인세율은 투자와 직결될 수 있다. 기업환경이 나빠져 국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며 "인상 과정에서 기업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달 27일 '법인세 인상이 불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 보고서를 냈다. 한경연은 법인세수가 지속해서 증가세를 보이므로 법인세를 올리지 않아도 세수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 삼성전자, LG화학 등의 유효법인세율이 외국 경쟁기업보다 높아 이미 세 부담이 상당하다고 지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