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격한 규모 차·경험 부족 등 리스크… '승자의 저주' 우려탄탄한 자금력·기대 시너지·인사 선조치 등 의지 보여
  • 서울 종로구 소재 대우건설 본사. ⓒ뉴데일리 DB
    ▲ 서울 종로구 소재 대우건설 본사. ⓒ뉴데일리 DB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업계 대다수는 양사간 규모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며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이 M&A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 탄탄한 재무 유동성을 갖췄다는 점을 들어 대우건설과의 합병 시너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마감된 대우건설 지분 50.75% 매각 본입찰에 호반건설이 단독 참여했다.

    호반건설이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했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될 계획이다. 이번 매각은 국가계약법이 적용되지 않아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더라도 입찰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KDB산업은행은 지난 17일 매각추진위원회를 열고 본입찰 최저기준선인 매각예정가 하한선을 주당 7300~7500원으로 정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본입찰에서 1조6000억원 수준의 인수가를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주당 7700원에 해당하며, 지난 19일 종가 5960원을 기준으로 하면 약 30%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진 것이다.

    호반건설은 전체 지분 중 40%에 대해서만 인수대금을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는 3년 뒤 인수하는 '분할방식'을 입찰조건으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호반건설과 대우건설 양측 모두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반건설의 경우 당장 지불해야 하는 인수대금 부담을 낮출 수 있고, 대우건설은 그간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통해 지원받았던 신용보증 효과를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호반건설이 당장 필요한 대금은 1조2000억~1조3000억원 안팎이다. 호반건설은 1조원가량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000억원대 리솜리조트 인수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수금융 및 대출 등으로 자금마련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금조달 계획에 재무적투자자(FI) 유치나 컨소시엄 구성 등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M&A업계에서는 무엇보다 산은의 매각의지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독입찰과 호반건설 측이 제시한 지분 분할매각 방안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매각조건에서 이견이 없다면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매각에 성공하면 시공능력평가 13위 중견건설사가 3위의 대형건설사를 인수하게 된다.

    시평액을 단순 합산하면 총 10조7533억원으로, 업계 '투톱'인 삼성물산 16조원, 현대건설 13조원에 이어 세 번째로 10조원대 벽을 넘는 대형건설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양사의 현격한 규모차에 따라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금호그룹도 대우건설에 큰 기대를 걸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인수했으나, 건설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실적이 부진해지자 그룹 전체 유동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 결과적으로 그룹 전체가 어려움에 빠졌다"며 "호반건설이 금호그룹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방향이 다르다는 점 역시 우려사항이다. 호반건설 사업이 주택사업에 특화돼 있다면 대우건설은 아파트는 물론, 플랜트·토목·원전 시공능력까지 보유한 종합건설사다.

    특히 호반건설은 설립 이래 해외사업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사업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대우건설은 2016년 4분기에 7000억원이 넘는 잠재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배스를 단행했지만, 지난해 3분기 또 다시 해외사업에서 추가손실을 낸 바 있다.

    직원들 간 화학적 결함도 넘어야 할 산이다. 대우건설은 그룹시절 잔상이 남아 있어 아직도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높다. 중견사인 호반건설에 인수된다는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대우건설 노조 역시 애초부터 호반건설 인수에 부정적 견해를 보여왔다.

    앞서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현재 인수후보로 언론 등을 통해 거론되고 있는 호반건설과 중국계 자본의 대우건설 인수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면 이들의 인수를 절대적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상열 회장의 적극적인 스탠스를 인수의지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호반건설은 한국종합기술, SK증권 등 3년간 10여차례 M&A 작업에 참여했으나, 정작 완주한 적이 드물다보니 '진정성'을 의심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적극적인 신규 사업 발굴과 M&A를 포함한 호반의 미래 비전 찾기에 전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를 대우건설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한다면 호반건설은 4411명에 달하는 대우건설의 기술 인력을 흡수해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특수 토건 분야 진출도 가능해지는 등 주택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다각화해 종합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대우건설이 수십년간 축적해온 해외 플랜트사업 노하우와 영업망을 고스란히 품을 수 있다는 점은 호반건설 사업다각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은 1976년 에콰도르 도로공사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40여년간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해외 프로젝트가 30여개에 이른다. 중동,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등 각 지역에 진출하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주택사업에서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호반건설은 자체 브랜드 '호반베르디움'을 통해 지방에서 인지도를 높이며 사세를 확장해왔으나, 강남권 재건축 사업 진출에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7년 연속 국내 주택공급 1위에 오른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와 프리미엄 브랜드 '푸르지오 써밋'을 이용해 강남권 진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단행한 호반건설그룹의 2018년도 정기임원인사 역시 대우건설 인수를 염두에 뒀다는 시각이 있다.

    그는 지난해 말 호반건설을 비롯해 호반건설주택, 호반건설산업, 호반베르디움 등의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김 회장은 대개 부사장이나 전무 직급에게 호반건설그룹의 각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겨왔는데, 이번 인사에서는 이들을 모두 사장 혹은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대표이사들의 무게감을 끌어올리고, 호반건설 대표이사 총괄부회장직을 수행한 전중규 부회장을 그룹 총괄부회장 자리에 앉힌 것도 전체적인 조직 안정화를 도모했다는 평이다. 김 회장이 대우건설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하더라도 호반건설과 대우건설은 각자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호반이 기존에 울트라건설, 퍼시픽랜드 등을 인수한 뒤에도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시너지를 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며 "점령군 행세보다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지원에 집중할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산은은 호반건설의 분할매각 방식을 포함해 자금조달 증빙, 회사의 경영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는 26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달 중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경우 대우건설은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매물로 대우건설을 내놓은 이후 9년여 만에 새 주인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