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잣대, 항소심 결과 좌우 최대 변수 떠올라""청탁 증거 없는데… 가능성만으로 대가관계 추단 오류도""후계자 경쟁 없는데, 왜 청탁 하겠나… 이재용 최후진술 주목해야"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했고, 승계작업과 관련해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법리해석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간접적인 증거만 가지고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항소심 결과는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과 수동적 뇌물공여를 어떻게 판단하는 지에 따라 나뉠 수 있다. 이에 해당 쟁점들을 되짚어 항소심 결과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특검이 주장하는 개별 현안 모두에 대하여 피고인 이재용의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청탁, 피고인 이재용 및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간접적 청탁은 인정되지 않는다.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에 관하여는 승계작업에 관해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이 인정된다'

    '삼성 뇌물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문 속 내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간의 직접적으로 오고 간 청탁은 없었지만, 암묵적 의사표시에 따른 청탁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부회장이 직접적인 부탁을 하진 않았지만 삼성의 승계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대통령과 현안 해결에 대한 암묵적 대가관계 합의가 이뤄졌다는 논리다.

    1심 재판부는 묵시적 청탁의 대가로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72억9427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16억2800만원)을 지목했다. 2014년 9월 15일 1차 단독면담을 시작으로 2차(2015년 7월 25일), 3차(2016년 2월 15일)까지 3차례에 걸쳐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한 묵시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 그리고 이는 곧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에 대한 실형 선고로 직결됐다.

    변호인단은 판결 이후 항소 이유서를 통해 "1심 재판부가 뇌물수수 성립의 전제로 인정한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부정한 청탁'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1심의 판단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예고했다. 때문에 묵시적 청탁이라는 애매모호한 잣대의 존재 여부는 항소심 결과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항소심에선 삼성의 승마 지원을 비롯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등이 승계작업을 위한 대가성 지원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됐다. 특검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두 가지 사안에 무죄를 선고받은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에 대해서도 청탁의 존재를 입증하겠다며 날을 세웠다.

    특검은 이들 쟁점에 대해 단독면담 과정을 통해 이뤄진 뇌물수수합의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익적 목적이 아닌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도움을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는 것이 특검의 주된 논리다.

    반면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의 경우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어 승계작업을 할 필요성도 없었으며, 입증할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특히 청탁의 존재여부는 무시한 채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대가관계를 추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항소심 1차 공판에서도 "정말로 경영권 승계에 대한 대통령의 관여가 필요했다면 명시적으로 청탁하면 그만인데 그토록 어렵게 묵시적으로 청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실제 대통령이 해준 것이라곤 감사하다는 표시뿐이었다. 특검과 1심의 논리대로라면 (승계를 돕기로 한) 대통령이 사기친 것과 같다"고 항변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특검이 청탁의 근거를 보강하기 위해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진술을 앞세워 주장한 '0차 독대'다. 특검은 2014년 하반기 청와대 안가에서 한 차례 독대가 추가로 있었다는 안 전 비서관의 진술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간의 최초 청탁이 이뤄진 시기를 기존 판결보다 사흘 앞당긴 2014년 9월 12일로 특정했다. 4번째 공소장 변경도 함께 이뤄졌다.

    불과 5분 가량 진행된 1차 단독면담에서 청탁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뒤집기 위한 시도였지만,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지 못한 안 전 비서관의 증언과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의 일지 등 제시된 증거들의 신빙성 논란으로 입증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세간의 관심은 오는 5일 항소심 재판부가 1심에 이어 묵시적 청탁의 실체를 인정할지 여부에 쏠려있다. 재계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3달간 이어진 항소심 과정을 통해 묵시적 청탁에 대한 변호인단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특검의 잇따른 공소장 변경과 함께 수많은 증거조사에서 묵시적 청탁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는 증거가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이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항소심 최후진술 당시 '다른 기업과 달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다. 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하겠냐'는 이 부회장의 발언 속에 모든 실체가 담겨 있다"며 "이는 묵시적 청탁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