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가족, 산재 보험 가입 안돼… 특례 적용 못받아
  • 식료품 포장 관련 작업.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연합뉴스
    ▲ 식료품 포장 관련 작업.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연합뉴스

    산업재해 가능성이 있는 중소·영세기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업주 자녀가 산재 보험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재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사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가입할 수 있게 특례가 적용된다. 하지만 사주 가족은 신분상 근로자도 사업주도 아니어서 원칙적으로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영세·중소기업 현장에서 가족을 근로자로 채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충남 천안시에서 근로자 30여명을 고용해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A사장은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근로자 B씨에 대한 3년 치 고용·산재보험료를 돌려받았다. 급전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B씨는 단순 근로자가 아닌 자기 아들이어서 애초 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었다며 환급을 신청한 것이다.

    A사장은 급한 불을 끄고 나자 현장에서 일하는 아들 B씨가 언제 다칠지 몰라 걱정됐다. 산재보험만이라도 다시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달 가입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으로부터 B씨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다시 가입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A사장은 자신처럼 아들을 사업주 특례를 적용받아 가입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단은 이번엔 B씨가 사업주가 아니어서 보험을 들어줄 규정이 없다고 거절했다.

    10여명의 직원을 두고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C사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C사장 아들 D씨는 아버지를 도와 현장에서 몇 년째 근로자로 일했고, C사장은 고용·산재보험료를 내왔다.

    공단은 나중에야 D씨가 C사장의 동거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보험료 일부를 돌려주고 가입을 취소했다. C사장은 아들이 현장에서 일하다 다칠 소지가 많다며 별도로 산재보험에 들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5일 노무사 업계 설명에 따르면 산재보험법상 근로자는 의무 가입대상이다. 업무상의 근로자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해 재해근로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돌려 말하면 산재보험법은 적용 대상이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중소·영세업체는 사업주도 현장에서 일할 때가 많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 산재보험법을 고쳐 현장에서 일하는 사업주를 근로자로 보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특례를 마련했다.

    문제는 B, D씨처럼 다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어도 사업주와의 관계가 동거 친족이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업주가 아니어서 가입 특례도 적용받지 못한다. 보험 가입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산재 발생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푸른노무법인 한 공인노무사는 "현장에서 일반 근로자와 별반 차이 없이 일해도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주 배우자나 자녀가 적지 않다"면서 "줄곧 보험료를 내왔지만, 공단에서 뒤늦게 사주 가족이라는 이유로 보험료를 되돌려주고 보험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애초 신청할 때 예외적으로 근로자임을 인정받는 방법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공단에서) 사주 자녀의 고용형태나 임금, 근로조건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고 사회 통념적으로 사업주 가족은 사용자와 특수한 관계에 있어 원칙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면서 "다만 근로자임을 입증하면 예외적으로 보험가입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주 자녀가 근로자로 인정받으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급여 등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고용부와 공단은 사업주가 근로계약서 등 근무자성을 인정받을 증빙자료를 내면 사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산재보험 가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태도다.

    그러나 푸른노무법인 노무사는 "사업주가 잘 모르는 경우를 비롯해 관행상 근로계약서를 맺지 않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주 자녀가 많은 게 현실"이라며 "산재는 사업주 가족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사업주 특례 적용 범위를 확대해 임의 가입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맞물려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에 부담을 느낀 영세·중소기업 사업주가 가족을 채용해 함께 일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푸른노무법인 노무사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질 수 있다"며 "사업주가 자신의 가족이 일하다 다칠 경우를 대비해 산재보험 가입을 신청하면 굳이 근로자임을 입증하지 않고도 사업주 특례 적용을 통해 임의로 가입할 수 있게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현장에서 사업주 부모와 같이 일하고 있음에도 (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산재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주 배우자나 자녀가 있다"면서 "현재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동거 친족도 사업주 특례를 확대 적용받을 수 있게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