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 심의절차 어겨"… "중요 원본 1400만건 관리 중"
  • ▲ 4대강 사업 관련 문건 파기 의혹 현장실사.ⓒ연합뉴스
    ▲ 4대강 사업 관련 문건 파기 의혹 현장실사.ⓒ연합뉴스

    4대강 사업 시행자라는 원죄(寃罪)가 있는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메모 등 보존 연한이 지난 사업 관련 문건 등을 임의로 파기하면서 절차를 어긴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수공이 고의나 조직적으로 문서를 없애려 했는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았다.

    수공은 잇단 기록물관리의 문제점과 관련해 철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지난달 18일 수공이 4대강 관련 문건 등 원본 기록물을 무단 파기하려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제보에 따라 현장에서 확보한 407건의 기록물을 파악한 결과 302건이 기록물 원본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발표했다.

    이들 문건은 결재권자가 직접 서명하는 등 원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문건 중에는 '소수력발전소 특별점검 조치결과 제출'과 '해수담수화 타당성조사 및 중장기 개발계획 수립' 등의 문서가 포함됐다.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에서 수공에 보낸 기록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기 결재는 없지만, '대외주의'로 분류한 '경인 아라뱃길 국고지원' 보고서, 수공 경영진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스(Vice) 보고용'이라는 문구가 있는 기록물도 있었다.

  • ▲ 수자원공사가 폐기하려던 경인 아라뱃길사업 관련 보고서.ⓒ연합뉴스
    ▲ 수자원공사가 폐기하려던 경인 아라뱃길사업 관련 보고서.ⓒ연합뉴스

    경인 아라뱃길 국고지원 보고서의 경우 애초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던 것을 '뉴딜 10대 프로젝트 사업'으로 선정해 공공부문 시행사업으로 변경하면서 보조금 지원근거에 따라 5247억원의 국고를 지원해달라는 건의사항과 함께 국고 지원에도 1조원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는 의견이 담겼다.

    수공은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공공기록물로도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등록 기록물에는 1조원 이상의 손실 발생 의견은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이들 기록물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공공기록물법)에 따라 등록해야 하는 공공기록물이다. 공공기록물을 파기할 때는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수공은 이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록원은 수공이 생산 과정에 있는 문서는 원칙적으로 기록물로 등록해야 한다는 법 규정을 어겼다고 봤다.

    다만 일부러 빠드렸는지, 실수로 등록하지 않았는지는 조사 권한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고 국가기록원은 부연했다.

    국가기록원 설명으로는 수공은 지난달 9~18일 총 5회에 걸쳐 기록물을 반출·파기했다. 박 의원이 공개 제보하기 전까지 4회에 걸쳐 총 16t 분량, 1회 평균 4t쯤을 심의절차 없이 파기했다. 폐기목록도 작성하지 않았다.

    수공은 국가기록원이 지적한 절차상의 문제점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태도다. 다만 문서의 의도적·조직적 무단 파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거듭 해명했다.

    수공은 국가기록원이 원본 기록물로 본 302건은 보존 연한이 지난 것들이라고 소명했다.

    특히 4대강 관련 자료 총 40건은 메모(업무연락) 29건, 출장결과 4건, 회의자료 6건, 기타 1건 등으로, 주요 정책 결정이나 공사현황 등 민감한 사항이 아니라 조경, 소수력 공사 등 주요 공정 외 현황을 파악하려고 작성한 업무 연락자료라는 것이다.

    장기 보존 가치나 중요도가 낮아 기록물로 분류하지 않고 일반자료로 분류해 개인 PC 등으로 관리해온 것들이라는 설명이다.

    1400만 건쯤의 중요 문서는 1997년 이후 전자문서시스템으로 관리·보관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가기록원이 예로 든 경인 아라뱃길 국고지원 보고서의 경우 '대외주의'가 표기됐음에도 수기 결재가 빠져 있는 것을 볼 때 내부 참고나 중간 검토자료용으로 작성해 보관했다는 수공 설명에 부합한다.

  • ▲ 이학수 수공 사장.ⓒ연합뉴스
    ▲ 이학수 수공 사장.ⓒ연합뉴스

    그러나 수공은 기록물 생산·관리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수공은 앞서 국가기록원의 '2017년 주요 기록물 관리 실태점검'에서 기록물 무단 파기와 관련해 지적을 받았다. 이는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도 보고됐다.

    하지만 수공은 이날부터 또다시 심의절차 없이 기록물을 반출·파기했고, 5회차 파기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에 의해 제보가 이뤄졌다.

    이에 대해 이학수 수공 사장은 "철저하지 못한 기록물 관리로 국민에게 걱정을 끼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기록물관리 개선 전사 기획반(TF)을 구성해 국가기록원 사례조사 등 기록물관리 전반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감사 등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빈틈없이 개선해 앞으로는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