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청구공사 높은 수준… 돌발 변수 '여전'수주경쟁 심화… 매출 규모 회복도 '요원'
  • ▲ 지난해 4분기 3000억원 규모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 대우건설의 모로코 사피 발전소 현장. ⓒ대우건설
    ▲ 지난해 4분기 3000억원 규모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 대우건설의 모로코 사피 발전소 현장. ⓒ대우건설


    대우건설 매각이 3000억원 규모의 '모로코 쇼크'로 무산되면서 건설업계에 해외 부실 공포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다수의 건설사들이 부실을 일시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하는 등 손실을 덜어냈지만, 여전히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부실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곳이 대우건설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해외사업을 하는 건설사들은 2010년을 전후로 경쟁이 치열해진 중동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섰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이 사업들의 준공이 돌아오면서 △GS건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한화건설 △대우건설 △SK건설 △포스코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이 원가율 재조정 등에 따른 대규모 추가비용이 발생하면서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형건설 A사 해외영업담당 관계자는 "입찰 당시 1등과 2등의 견적 차이가 현격히 나거나 발주처와 가격을 다시 협상하는 경우 대부분 적자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며 "2000년대 중후반에 수주한 플랜트 공사 중에서 흑자를 낸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실을 많이 털어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프로젝트들은 건설사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16년 4분기 빅 배스를 단행했다. 대우조선해양 회계 분식 사태로 수주산업 회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2016년 3분기 안진회계법인이 감사의견 '거절'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대우건설은 지난해 4분기 모로코에서 3000억원의 손실이 재차 발생했다. 일회성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잠재 부실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ENG와 GS건설도 지난해 4분기 해외에서 손실을 냈다. 삼성ENG는 UAE 카본블랙 정유공장에서 1400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지난해 4분기 6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GS건설은 이집트 ERC 현장에서 809억원의 손실이 나면서 마이너스 매출총이익률(-12.6%)을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손실이 계속 터져 나오면서 해외 저가수주 후유증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1개사의 미청구공사 대금 총액은 모두 11조8294억원으로, 대형건설사 한 곳당 평균 1조원 이상의 미청구공사액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창현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해외건설의 경우 대규모 유형자산 등 설비투자자금 소요가 제한적인 가운데 진행형 산업 특성상 미청구공사를 포함한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 등 운전자금의 총자산 내 비중이 높은 수준"이라며 "예정원가율 재조정 등에 따른 미청구공사의 부실화 등으로 보유자산의 가치 변동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해외건설 영위기업들의 전반적인 재무위험은 매우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개선되지 않는 해외발주시장 여건으로 해외 부문의 외형 축소도 진행되고 있다.

    앞선 대규모 손실 반영으로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로 전략을 변경함에 따라 과거에 비해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 부담은 완화되고 있지만, 반대로 해외수주 실적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해외건설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 건설기업들의 신규 해외수주액은 2010년 715억달러로 고점을 찍은 이후 2014년 660억달러, 2015년 461억달러 등으로 지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2016~2017년 최근 2년간은 300억달러를 하회했다. 해외 신규수주액이 2년 연속 300억달러를 밑돈 것은 2005년~2006년 이후 12년 만이다.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중동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의 재정적 여력 및 발주량이 감소한 가운데 유로화·엔화 양적완화 등에 따른 선진국 건설사들의 가격경쟁력 개선과 중국·터키 등 신흥국 건설사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중동 내 높은 가격경쟁 강도가 지속되고 있다.

    선영귀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적자공사의 준공이 이어지고 있어 해외 부문 손실 폭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하된 해외수주 여건과 주요 사업의 준공 지연을 고려할 때 해외 부문의 부진한 실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강화된 국내 수주산업 회계감리에 따른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보수적인 원가율 재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점은 해외건설기업의 회계적 수익성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 발생 가능성이 있는 원가는 선반영하는 반면, 추가 발생 가능 이익은 확정 시점에 반영해 분기별로 순익 편차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결국 추가 발생 가능 이익의 확정 시점이 준공 협상 단계지만, 현재 상당수의 사업이 준공 협상 단계 이전이라서 아직까지는 손실이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보수적인 회계처리로 인한 손실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기술력 우위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으로 따낸 수주물량이 많아 원가율 상승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며 "그동안 많은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손실액을 회계에 나눠 반영해 충격을 완화시켰지만, 수천억원대 손실이 일시에 발생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어닝쇼크를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해외부실 재발 요인이 여전한데다 신규수주 부진과 저조한 채산성이 이어지 해외사업 손실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지난해 종결될 것으로 기대됐던 다수의 현안 프로젝트들이 연내네 마무리 되지 못하고 준공 예상시점을 2018년 이후로 연기한 상황"이라며 "현안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예정원가 추가 조정, 지체상금 관련 손실은 지난해 해외건설 수익성 개선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2019년 이후 수익성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